[수상자황동규씨]"온 삶과 우주가 감응하는 것이 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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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내가 늘 세배 다니던 분의 상을 받게돼 즐겁습니다. 미당처럼 우리 시를 민족 전체가 깊이 다가갈 수 있게 한 시인도 드뭅니다. 미당 시를 읽고 감동받은 사람들은 그 감동을 진솔하게, 실존적으로 전해야합니다. 물론 그의 친일·어용 시비와는 별개로 말입니다."

관악산 자락 서울대 교정에 가을이 다가오고 있다. 시 '탁족(濯足)'으로 미당 문학상에 선정됐다는 소식을 전하자 정년을 1년도 채 안남긴 노교수 황동규(黃東奎·64)시인이 어린애처럼 즐거움을 감추지 못했다.

1958년 미당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문단에 나와 이제 그의 이름으로 제정된 최고 권위의 시문학상을 받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러나 황씨는 세상만사에 언제나 온몸으로 감응할 준비가 돼 있고 그 감응이 정제된 것이 그의 시다.

"가을이 머리 속의 생각으로 부터옵니까, 피부의 감촉으로부터 옵니까? 어느날 문득 서늘한 감촉으로부터 우리는 우리의 온 삶과 우주 속의 가을과 감응하지 않습니까. 이런 것들을 형상화해 너와 내가 즐겁게, 축축하게 소통하는 것이 시라고 생각합니다."

머리가 아니라 이렇게 온몸으로 쓰기에 시는 다른 어떤 학문이나 종교나 예술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고 나아가 우위에 놓일 수 있다. 머리로 시를 쓴다면 어떻게 다른 학문에 시가 당해낼 수 있겠느냐고 황씨는 반문한다.

황씨의 이 말은 요즘 머리로만 시를 쓰는 시인들에 대한 경계로도 들린다. 또 시를 정의니 사회니 하며 무엇을 위한 도구로만 보는 사람들에 대한 불만으로도 들린다.

황씨는 머리가 아니라 온몸으로 시를 쓰기 위해 항상 여행을 떠난다.'면벽(面壁)'하며 머리를 굴리는 것이 아니라 '면산천(面山川)'하며 온몸으로 시를 얻기 위해 자연관찰 학습 떠나는 모범생 같이 여행을 한다. 황씨의 이런 '온몸으로 시쓰기'는 그의 시를 항상 어디로 튈지 모르게, 살아 출렁이게 한다.

그래서 그의 시 진폭은 크고 생생하다.수백만명의 가슴을 첫사랑에 대한 추억으로 촉촉히 적신 '즐거운 편지'에서부터 십수년간 죽음과 소멸까지도 즐겁게 받아들이기 위해 사투한 '풍장'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살아내고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삶만큼 황씨의 시의 스펙트럼은 넓다.

"물론 시쓰기보다 여행이 좋습니다. 여행 중에 만난 즐거운 사물들과 생각들을 형상화시킨 것이 제 시입니다. 같이 여행을 다니던 친구들이 저보다 더 빨리 늙었는지 떠나길 꺼려하니 저 또한 여행 횟수가 줄어 걱정입니다." 거의 매주 떠나던 여행의 횟수가 부쩍 줄어들어 걱정이라는 황씨의 시 중 여행지의 풍물을 읊은 여행시는 없다. 그에게 여행은 삶의 속내를 생생히 만나고 형상화하기 위한 시쓰기 그 자체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시인은 두가지 부류로 나뉠 수 있다. 아예 시를 접어버린 '폐업 시인'이 있는가 하면 시를 썼다 하면 그 시가 또 그 시인 '관성파 시인'들이 있다. 그 반대편에 새롭게,다르게 시를 쓰며 한 궤적을 그려나가 일가를 이루고 있는 '큰시인'들이 있다. 그 큰 시인들의 시를 보면 매양 새로우면서도 앞서 쓴 시들의 깊이가 층층이 쌓인 '내공(內功)'이 그대로 느껴진다. 지금 우리 시단에서 보기 드문 일가를 이뤄가고 있는 큰시인 중 한 명이 황씨다.

"늦가을 저녁/산들이 긴 그림자를 거두어들일 때/검불 몇 날리는 바람 속에/목소리 막 지우기 시작하는/적막한 새소리.//불타가 말했다/'저 소리를 듣다보면/세상 온갖 풀과 인연이 마르고/다리 위를 건너기보다는/물 위를 건너고 싶어진다.'/원효가 물었다./'물이라도 건넌다면 그 또한 다리가 아니겠습니까?'/면벽과 면산천의 차이지.'"

82년부터 95년까지 연작시 '풍장'을 완성하고 나서 황씨는 요즘 위 시 '적막한 새소리'의 일부에서와 같은 전혀 새로운 시세계를 펼쳐보이고 있다. 예수·석가·원효·니체 등 옛 성인·현자를 내세워 인간성과 세계의 가장 깊숙한 본질을 파고 들고 있다. 그런 황씨의 시에선 우주 시원(始源)의 서곡 같은 새소리가 낮게 들리고 존재의 그림자 같은 이미지가 드러난다.

불타와 예수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는 의미도 종교적이 아니라 깨달은 자, 우주의 속내를 바라보는 견자(見者)의 말이고 황씨가 온몸으로 시 쓰며 살아낸 삶의 뜻이다. 종교를, 우주의 속내를 지극히 인간적으로, 시적으로 형상화하는 한국시의 장엄한 서곡이 황씨에 의해 시작된 것이다.

글=이경철 문화전문기자,

사진=최정동 기자

시인 황 동 규는

▶1938년 출생

▶58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68년~현재 서울대 영문과 교수

▶시집 『삼남에 내리는 눈』『몰운대행』『풍장』『외계인』『버클리풍의 사랑노래』등

▶현대문학상·한국문학상·이산문학상·대산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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