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준 교육부총리 사흘 만에 사퇴… 여권 일각서도 경질 건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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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일 오후 사퇴 기자회견을 마친 이기준 교육부총리가 서울 세종로 정부 중앙청사 현관에서 교육부 간부들의 배웅을 받고 있다. 오종택 기자

도덕성 논란에 빠진 이기준 교육부총리가 결국 사퇴했다. 당초 청와대는 "문제 없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고수했다. 이병완 홍보수석을 통해 전달된 "우리 교육의 문제는 대학의 경쟁력 확보와 구조조정 여부에 있다. 대학도 경쟁시대를 맞아 개혁 개편되고 선진화해야 한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언급이 인선 배경으로 인식되면서, '이 부총리 카드'를 지킬 든든한 방패막이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 국적을 포기한 이 부총리 장남의 건물등기 문제가 새로 터져나오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청와대와 여권 내부에서조차 "쉽게 생각하다간 그동안 쌓아놓은 참여정부의 인사시스템 자체가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기 시작했다. 김종민 대변인은 이날 이 부총리의 사의 표명 이후 "청와대가 이 부총리에게 사퇴를 제안한 것은 없다"고 했으나 이 같은 기류는 이 부총리에게 직.간접으로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여권 일각에서는 이 부총리 경질을 대통령에게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권 핵심인사는 "불법이 아닌 사외이사나 자녀 국적 문제를 흠으로는 볼 수 있어도 도덕성 문제로까지 비화시킬 수 없다는 게 청와대의 기본 원칙이었다"며 "그러나 장남 재산 문제가 불거진 이상 그 원칙을 계속 고집하기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내부적으로 상황은 매우 급박하게 진행됐다. 문재인 시민사회 수석은 7일 오전까지만 해도 "아직까지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지 않았다. 교체 등을 검토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정찬용 인사수석도 "교체는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청와대가 이 같은 태도를 보인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우선 노 대통령의 최종 결심이 이때까지는 내려지지 않았을 수 있다. 둘째는 노 대통령이 이 부총리 인선에 대해 몇 마디 언급하면서 교체 불가 방침을 시사했던 대목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 점을 들어 "결국 이 부총리가 자진사퇴하고 이를 대통령이 수용하는 수순으로 문제가 마무리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했다"고 설명했다.

기류가 바뀐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여론이다. 또 다른 시빗거리가 나올 가능성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6일 밤 "서울대 총장 재직시 문제가 된 판공비는 1년치다. 다른 연도의 판공비 사용 내역이나, 또 다른 도덕성 논란이 일 수 있는 문제가 터져 나오면 매우 어렵게 된다. 지켜봐야겠다"고 토로했었다.

친여 매체에서 먼저 이번 인선에 문제를 제기하고 전통적인 여권의 지지층이던 시민사회 단체가 비판에 가세한 점도 이번 사태의 특징이다. 이 때문에 이번 파문은 청와대 등 여권 내부의 역학 관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기준 카드'를 꺼냈고, 문제가 터진 후에도 계속 밀어붙였던 그룹의 입지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당장 청와대 내에서도 추천, 검증을 둘러싼 인책론이 제기될 수 있다. 여권 관계자는 "왜 이번 사태가 친노그룹을 중심으로 터져나왔는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며 "지난해 하반기부터 감지된 권력 내부 개혁파와 실용파 간의 미묘한 신경전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표면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올해 국정운영기조를 경제 올인과 국민통합으로 선회하기로 했으나 그와 병행해 갈 개혁의 강도를 어느 수준으로 할 것인지에 대해 지지층의 서로 다른 요구가 표출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수호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jongta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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