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재실의딛고다시일어서는 사람들]영동군 김정자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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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목숨이라도 건진 게 얼마나 다행이에요."

충북 영동군 황간면 김정자(49·여)씨는 하천 제방이 유실되면서 집이 흔적도 없이 쓸려나가 오갈 데 없는 처지인데도 실의를 접고 남을 돕느라 팔을 걷어붙였다.

나흘째 이웃집을 찾아 자원봉사에 나섰던 金씨는 5일 오전 6시에 일어나 면사무소에 마련된 임시 급식소로 나가 설거지 등 닥치는대로 허드렛일을 도맡았다. 잠시라도 틈이 나면 이웃집 가재도구 정리를 거들었다.

천식환자로 몸이 불편한 남편(56)대신 문구점을 운영하며 딸(26)과 함께 살던 金씨가 날벼락을 맞은 것은 지난달 31일 오후 9시쯤.

면사무소에서 대피경보를 내려 인근 성당으로 피신해 있던 중 집이 떠내려갔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마을은 어른 키 높이로 침수돼 가볼 수 없었다. 이미 물살이 거세지면서 金씨 집앞 제방이 유실되는 바람에 문구점뿐 아니라 안채 살림집까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뒤였다.

경황 중 지갑도 챙기지 못하고 대피했던 金씨는 이튿날 보은에 거주하는 시집간 딸에게서 옷가지를 얻어 돌아온 뒤 성당과 경로당에서 생활해왔다.

"처음엔 절망감에 눈물로 보냈지만 일손이 달려 애태우는 이웃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어요."

아예 집이 떠내려가 아무 할 일이 없었던 金씨는 지난 2일부터 앞집 수퍼마켓과 뒷집 피아노학원 등을 찾아다니며 몸사리지 않고 상품 정리와 청소 등 복구작업을 도와 주위를 감동시켰다.

金씨는 딸에게도 "우리가 도울 수 있는 데까지 남을 돕자"라고 말하며 의연함을 잃지 않으려 했다.

영동=안남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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