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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쌓아두며 투자않고, 중기에 떠넘기고 … MB, 대기업에 화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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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청와대가 진두 지휘하는 ‘친서민’ 드라이브에 각 부처의 손길이 바빠졌다. 바뀐 바람결대로 분주히 움직이곤 있다. 하지만 “역대 정부에서 수십 차례 만져본 정책이지만 왠지 모르게 낯설게 느껴진다”는 반응들이 나온다.

‘부자 정부’ ‘강부자 정권’ 등 이명박 정부 초기 프레임의 잔영이 너무 강렬한 탓이다. 몸에 잘 맞지 않는 유니폼을 맞춰 입은 듯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특히 경제관료들은 재정이 들어가는 친서민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정부 출범 초에 설정된 감세 정책을 흔들어도 되는 것인지 고심하고 있다.

‘친서민’ 잣대는 이제 국정의 가이드라인이 됐다. 항로를 못 정해 일어난 부처 간 부동산 대책 공방, 캐피털업계의 고금리 논란이 모두 이 잣대로 교통정리가 됐다. 아울러 공정거래위원회가 주도하는 대기업 불공정거래 조사, 또 기획재정부가 준비하는 청년취업대책, 물가안정대책, 세제개편 방안이 모두 직간접적으로 서민 대책과 연결돼 있다.

부동산 대책의 경우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완화하진 못하더라도 거래 활성화 대책은 필요하다는 쪽으로 정리됐다. 임종룡 기획재정부 제1차관은 지난 25일 제주 강연에서 “주택 가격이 좀 더 떨어져 안정돼야 하는 것이 맞지만 거래가 되지 않으면 서민이 고통을 겪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현재 서민·중산층의 실수요 위주 거래를 활성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부동산 대책을 검토 중이다.

금융위원회는 캐피털업계의 고금리 대출 실태를 조사하고 있다. 지난 22일 미소금융 현장을 방문한 이 대통령이 ‘40~50% 고금리’라는 다소 부정확한 발언에 격노한 뒤 이뤄진 것이다. 정부는 이와 함께 지역신보, 신용회복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자산관리공사, 햇살론을 취급하는 서민금융사, 미소금융을 하고 있는 각 재단 등 서민금융 인프라를 직접 챙기고 있다. 서민금융의 골격을 다듬고, 방법론에서도 일신해야 한다는 긴장감이 금융계에 팽배해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대기업 불공정거래를 강도 높게 조사하는 것도 친서민 정책과 맞닿아 있다. 호황을 누리는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은 살얼음 위를 걷고 있기 때문에 중소기업 근로자(서민)의 삶이 개선될 수 없다는 게 청와대의 인식이다.

재정부는 다음 달 발표할 올해 정기 세제 개편안의 초점을 재정 건전성과 친서민 정책기조 반영에 맞출 방침이다. 그러나 둘은 상충되는 목표다. 친서민 기조를 중시하면 각종 감면 혜택을 유지해야 하는데, 재정 건전성을 위해선 과세 기반을 오히려 확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주목되는 것은 양도소득세 중과 제도의 향방이다. 재정부는 이달 중 용역 결과가 나오면 시장 상황 등을 감안해 세제 개편안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중과세의 항구 폐지도 고려됐으나, 친서민 바람과 함께 사라질 가능성이 커졌다. 재정부는 또 서민의 생활물가 안정을 위해 9월 중순께 물가안정종합대책을 내놓을 계획이다. 여기에는 공공기관이 자발적으로 원가절감에 나서도록 일정 기간 적용할 요금의 가격 상한을 미리 정하는 ‘중기요금협의제’가 포함된다.

지식경제부 등에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생전략을 다시 짜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동반 성장할 수 있게 산업생태계 전략을 새로 만들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부처별로 추진 중인 친서민 정책은 아직까지는 실태 점검 단계다. 점검과 조사가 끝난 다음엔 어떤 형태로든 조치가 나오게 돼 있다. 새로운 대책이 나올 수도 있지만, 기존의 시장구조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결론에 이르면 이를 시정하려는 징벌적 조치도 예상된다. 대기업과 금융사들이 언제 튈지 모를 불똥에 긴장하고 있는 이유다.

허귀식 기자

대기업·친서민 정책 관련 말말말

이명박 대통령

▶ “대기업도 진정으로 바닥 민심을 알고 사회적 약자에 대해 배려하는 마음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고 본다.” (6월 11일 서울시립청소년직업체험센터에서)

▶ “대기업은 스스로 잘할 능력이 있으니, 규제 없이 길만 열어주면 된다. 하지만 중소기업은 정책을 가지고 도와야 한다.”(7월 13일 녹색성장위 사전보고에서)

▶ “미소금융이 대부분 대기업 출자인데 본업이 아니다 보니 미흡한 부분도 있는 것 같다. 대기업 CEO가 적극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7월 20일 국무회의)

▶ “대기업은 몇천억원 이익 났다고 하는데, 없는 사람들은 죽겠다고 하니까 심리적 부담이 된다. 대기업들도 (정부가) 하라니까 하는 게 아니고 사회적 책임을 느껴야 된다.”(7월 22일 미소금융 포스코 지점을 방문해)

▶ “대기업을 쥐어짜는 것이 아니라 공정하게 하라는 얘기다. 대기업의 현금 보유량이 많은데 투자를 안 하니 서민이 더 힘들다.”(7월 23일 청와대 수석회의)

정운찬 총리

정운찬 총리

▶ “대기업이 실적주의에 따라 CEO를 평가하기 때문에 원가를 낮추려고 중소기업에 원가 절감을 이전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7월 7일 총리실 간부회의)

▶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협력하는 문화가 확산되도록 필요한 역할을 하려고 한다. 관계 부처는 중소기업 실태와 애로를 꼼꼼히 점검해 필요한 개선 방안을 서둘러 마련해달라.”(7월 9일 국가정책조정회의)

▶ “최근 삼성전자·현대차·LG 등이 호황을 누리며 한국 경제의 경기를 끌어가고 있으나 그 혜택이 중소기업까지 퍼지지 않아 체감 경기가 양극화되고 있다.”(7월 13일 국무회의)

▶ “지난주에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생 얘기를 했는데 대통령이 ‘너무 진보적으로 보이면 어떻게 하느냐’고 말할 정도로 (대통령도) 중소기업에 대한 관심이 많다.”(7월 20일 시장 방문길에서)

▶“경기가 어려울 때는 중소기업에 비용을 전가하면서, 경기가 호전될 경우에는 혜택을 공유하지 않아 중소기업의 어려움이 가중된다는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7월 21일 대한상의 제주포럼 특강)

▶“(상생 방안이) 대기업들에 중소기업을 향해 시혜를 베풀라는 것이 아니다. 대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중소기업이 튼튼해야 한다. 중소기업에서 만드는 부품이 강하지 않으면 상생이 어렵지 않은가.”(7월 26일 총리실 간부 티타임)

백용호 청와대 정책실장

백용호 정책실장

▶ “현 시점에선 DTI 규제 완화 논의 자체에 문제가 있다. 친서민 기조와 맞지 않다.”(7월 20일 경제부처 장관들 ‘서별관 회의’ 이후)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 “경기가 지속적으로 회복되고 있지만 서민들의 체감경기가 충분히 회복되지 않아 안타깝다. 서민들이 가장 민감하게 여기는 물가 여건이 국제유가의 재상승 등으로 나빠지고 있다.”(7월 14일 위기관리대책회의에서)

박병옥 청와대 서민정책비서관

임태희 대통령실장

▶ “더욱 철저한 투기이익 환수와 이를 통한 거품 제거만이 (집값)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2006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총장 시절 인터뷰에서)

임태희 대통령실장

▶ “노동운동도 일자리 문제 해결에 비중을 두어야 한다. 기업도 일자리를 함께 해결하는 책임을 보여주길 바란다.”(지난해 12월 14일, 서민·고용분야 업무보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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