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진·약품 턱없이 모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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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수해 지역에 눈병과 피부병·호흡기 질환 등이 번지는 것은 무엇보다 폭우로 인해 수돗물 공급이 중단되면서 주민들이 위생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강릉시 등 강원도 수해지역의 경우 지난달 31일부터 수돗물이 끊기면서 일부 저지대를 제외한 지역에는 닷새째 수돗물을 공급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폭우로 가축 분뇨와 생활 오폐수로 오염된 물과 토양에 신체가 노출되면서 각종 질병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눈병과 피부병·찰과상 등은 소독하거나 청결하게 하면 쉽게 나을 수 있는 질환인데도 수재민들은 복구작업 도중 2차 감염으로 증상이 더욱 악화되고 있다.

또 도로 등에 쌓인 흙더미와 수만t의 생활쓰레기를 제때 처리하지 못하는 것도 전염병이 퍼지는 원인이다.

◇실태=수해 지역은 방대한 반면 장비 및 인력이 부족한데다 도로가 유실돼 현장 접근이 안되는 곳이 많아 전염병 확산 예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강원도의 경우 72개반 2백34명의 방역단과 19개반 1백56명의 의료 지원반을 편성해 활동하고 있으나 수해 지역이 워낙 넓어 의료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경북 김천시도 보건소 7곳에서 방역 작업에 나섰으나 연막 및 분무 소독 작업에 그치고 있다.

의약품도 부족해 강원도는 방역 소독약품 2천ℓ와 2만7천여명분의 장티푸스 예방주사약을 수해 지역에 긴급 지원했으나 모자라 중앙정부에 방역소독 약품 1만4천9백50ℓ를 지원해주도록 요청했다.

충북 영동군 황간면 최종범 보건지소장은 "눈병 환자가 70% 이상 차지하고 있으나 전문 의료진이 없어 4일에야 겨우 안과전문의 한명이 자원봉사 중"이라며 "그나마 안질환 치료제가 바닥나 효과적인 치료를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국의 대응도 늦었다. 대부분 수해 지역의 경우 지난 1일 새벽 비가 그쳤으나 방역 활동은 이틀이 지난 3일에야 시작됐다.

강원도 내 7개 시·군 3만7천여 고립 주민의 경우 3일 오후부터 헬기를 통해 생수와 구호물품을 지원받는 바람에 나흘간 오염된 물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일부 고립 지역에서는 4일부터 헬기를 이용해 읍·면별로 고작 2~3명의 인원과 소형 연막소독기 1대로 방역 작업을 시작했으나 긴급 의료반은 배치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대부분 수해 지역의 경우 식수와 샤워 등이 가능한 맑은 물이 공급되려면 최소 4~5일 이상 걸릴 것으로 예상돼 수인성 전염병이 우려된다.

◇예방=수해 지역 주민들은 우선 오염된 물과 직·간접 접촉을 피해야 한다. 가축의 배설물이나 인분이 녹아 있는 물이 안방까지 들어와 가구와 침구를 오염시켰기 때문이다. 이들 분변은 세균의 먹잇감이 되는 데다 무더운 날씨 때문에 세균 증식 속도가 빠르므로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이질 등 수인성 전염병과 식중독 세균이 실내 곳곳에 있다고 봐야 한다.

물에 젖은 침구와 가구·의류는 햇볕에 바싹 말려야 한다. 대부분의 세균은 일광소독만으로도 죽는다. 방 바닥처럼 일광소독이 어렵거나 음식물을 담는 식기 등은 소독용 락스를 희석시킨 물로 씻고 닦는 것이 안전하다.

음식이나 물은 반드시 끓여 먹어야 한다.채소나 과일 등 끓여 먹지 않는 식품은 당분간 삼가는 것이 좋다.

하수도나 가축 사육장·화장실 등이 인근에 위치한 경우라면 더욱 위생에 신경을 써야 하며 장티푸스 백신 등 예방주사를 맞는 것이 좋다.

피부 위생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수해 지역에서 가장 흔한 질환이 바로 접촉성 피부염이기 때문이다.

복구 작업을 하더라도 장화를 신고 면장갑 위에 고무장갑을 착용해야 안전하다. 긴 소매 상의나 긴 바지를 입는다.

작업 후 반드시 비누로 몸을 깨끗이 씻어야 한다. 열이 나거나 설사가 나면 곧바로 보건소나 병·의원을 찾는다. 이질이나 장티푸스 등 수인성 전염병의 경우 확산을 막기 위해선 격리 치료 등 초동 대처가 중요하다.

◇대책=전문가들은 깨끗한 물 공급이 가장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기존 취·정수장 복구에만 의존하지 말고 관정 개발 등 임시 취수원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강릉시의 경우 연곡과 평창 등 3곳에서 소방급수차를 이용해 수돗물을 공급하고 있으나 취수원이 부족해 평소 수요량(하루 7만t)의 2%도 안되는 1천여t을 공급하는 데 그치고 있다.

또 살수차와 포클레인 등 중장비와 인력을 최대한 동원해 도로·주택·상가에 쌓여 있는 쓰레기·흙더미를 신속히 제거해 각종 병균이 서식할 수 있는 환경을 없애야 한다.

이와 함께 전염병이 우려되는 만큼 수해 지역 초·중·고교는 당분간 휴교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강릉=홍창업 기자,

홍혜걸 의학전문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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