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선유도 공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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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양화대교를 북에서 남으로 건너다보면 한강변에 길고 잘록한 섬 하나가 나타난다. 선유도다. 말 그대로 신선이 노닐던 그 아름다운 모습은 조선 후기의 화가 겸재 정선의 화폭에 남았다. 일제강점기에는 김포비행장 건설을 위한 채석장으로, 1973년부터는 한강 물을 퍼 수돗물로 만들던 정수장으로 바뀌면서 섬은 제 모습을 잃고 사람들 머리 속에서 잊혀져갔다.

그 선유도가 공원으로 새 단장을 하고 시민들 곁으로 돌아왔다. 도시 공원 하나가 서울 시민들 재산 목록에 올랐다. 건축가 조성룡(조성룡도시건축 대표)씨와 조경설계가 성종상(조경설계 서안 소장)씨가 손잡고 만든 이 공원은 낡고 못쓰게 된 공장을 불도저로 밀어내는 대신 지난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하는 방법으로 생태 공원의 뜻을 생각케 한다.

공원의 들머리에 서있는 방문자 안내소는 정수장 시설 가운데 급속여과지를 재활용했다. 벽체와 지붕만 들어내 지하층 전체를 하늘로 열린 주차장으로 재탄생시켰다. 안내소 맞은 편에 들어선 수질정화 정원인 '시간의 정원'과 온실, 환경물놀이장은 원래 약품침전지였던 곳이다. 5m 높이의 수조를 비운 뒤 계단식으로 다시 올려 수생식물을 심었고, 자연 소재를 배치하고 나니 아이들을 위한 환경물놀이터로 손색이 없었다.

또 다른 여과지는 수생식물원으로, 취수펌프장은 '카페테리아 나루'로, 농축조와 조정조는 4개의 원형공간으로 변신해 각기 원형극장·환경놀이마당·환경교실·화장실로 모습을 바꾸었다. 3층 규모의 송수펌프실은 한강전시관으로, 지하 정수지는 녹색 기둥의 정원으로 탈바꿈했다. 58개였던 옛 정수장 건물 가운데 12곳이 이렇게 훌륭한 휴식과 교육의 장소로 거듭났다. 원래 기능을 존중하며 그 기능을 추억할 수 있는 기능을 덧댄 발상이 상큼하다. 기존 건물들을 철거하며 나온 폐자재들로 바닥을 깐 것도 친환경적 건축으로 미래형 건축의 모범이다. 오랜 시간의 흐름, 그곳을 흘러 시민들 집으로 들어갔을 물의 흔적이 그대로 드러난 콘크리트와 폐파이프가 본래 기능과 다른 방향으로 살아 움직이는 모습은 21세기의 선유도라 할 만하다.

조경설계를 맡았던 성종상씨는 이 선유도 공원 마스터플랜을 "장소에 대한 기억의 재생, 산업시설이 남긴 부산물에 대한 새로운 해석, 환경을 놓고 벌인 미학과 테크놀로지의 결합"이라 부르며, "새로운 유형의 공원을 선보이고 싶었다"고 말했다. 건축가 조성룡씨는 "서울이라는 대도시의 개발과 파괴로 상처입은 땅 선유도의 기억을 오롯이 드러내는 한편으로 삶에 대한 반성을 표현했다"고 덧붙였다.

이들의 마음을 마음으로 받아서 선유도 공원을 제 집 마당처럼 노니는 건 시민들 몫이다.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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