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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교부 주택정책 못미더워 갈팡질팡하는 수요자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9면

천정부지(天井不知)로 치솟는 서울 강남의 아파트값을 잡기 위한 정부의 강도 높은 처방책이 발표되자 주택 경기의 향방을 묻는 독자들의 전화가 부쩍 많아졌다.

정부의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을 믿고 집 구입시기를 뒤로 미뤘다가 오히려 가격이 더 올라 낭패를 본 수요자들 입장에서는 비록 이번 조치의 강도가 예전보다 높은 수준이라 해도 선뜻 믿기지 않은 게 당연하다. 그렇다고 정부 시책을 무시하고 집을 사려 해도 찜찜하고 부담이 갈 게다.

정부는 주택시장 안정을 위해 올해만도 지금까지 네차례의 대책을 내놓았지만 집값 상승세는 멈추지 않았고 최근에는 정책을 비웃기라도 하듯 한달 새 1억원이 오른 아파트도 생겨났다. 상황이 이러니 그동안 정부시책을 따랐다가 앉아서 손해본 수요자들로서는 얼마나 억울했겠는가.

원래 부동산은 정부 시책 반대로 하면 돈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정책의 방향과 거꾸로 가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그만큼 정책의 내용이 임시 방편으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8·9 조치로 불리는 이번 대책은 아파트값 상승을 주도했던 재건축 기준을 대폭 강화하는 내용이 들어 있어 그 약효가 여느 때와 다를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기대했던 재건축이 불가능해 지거나 장기적으로 표류하게 되면 가격은 떨어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부동산 값은 한번 오르면 좀체 원래대로 내리지 않는다. 하방 경직성(下方硬直性)을 부동산 특성 중의 하나로 꼽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외환위기와 같은 비상사태가 벌어진다든가, 경기침체의 골이 깊고 주택공급이 대폭 늘어나면 가격폭락 현상이 일어날 수 있지만 웬만한 악재에는 별로 동요되지 않고, 설령 하락세를 보이더라도 금방 회복세로 돌아 서곤 하는 게 우리의 집값이다.

이번 조치도 그렇다. 재건축이 어려운 곳은 어느 정도 타격을 받게 되겠지만 사업이 가능한 단지는 희소가치 영향으로 오히려 큰 폭으로 오를 소지가 많다. 일부 단지의 오름세는 다른 지역으로 확산돼 전반적인 상승세를 불러 올 수도 있다.

그래서 하는 말이지만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포석없이 단기적인 시각에서 만들어진 정책으로는 주택시장을 결코 안정시킬 수 없다는 것을 정부는 잊어서는 안된다.

그런데도 건설교통부의 당국자들은 "서울 강남 일부 아파트의 현상을 가지고 언론이 너무 호들갑을 떨고 있다"고 말할 정도로 요즘의 주택시장을 가볍게 보는 기색이 역력하다. 이번의 강경 조치도 재정경제부나 서울시가 주장해 나온 것이라는 얘기까지 들린다. 개인소득은 별로 늘지 않았는데도 서울의 집값은 최근 몇 년 새 두 배 가량 오른 것은 건교부의 정책실패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당국자는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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