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시아 대재앙] 종교간 반목 딛고 도움의 손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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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3일 오후 10시(한국시간 4일 오전 1시) 스리랑카 남부 마타라시의 시립종합병원. 지난해 결혼한 18세 '소녀주부' 나틸라가 방금 전에 세상에 나온 2.5㎏의 아들을 안고 눈물을 흘렸다.

나틸라는 지진해일에 남편과 삶의 터전을 잃은 이재민. 우체부이던 남편은 대재앙이 발생한 지난달 26일 기차를 타고 가다 탈선사고로 800여명과 함께 목숨을 잃었고, 코헬라 해변에 있는 집은 흔적만 남긴 채 사라졌다.

"뱃속의 아이를 살려야 한다는 일념에 정신없이 뛰다가 물이 덮치자 야자수 나무를 잡고 버텼다. 집터에서 건진 것은 남편 사진이 담긴 앨범 하나였다." 나틸라는 끔찍했던 순간을 그렇게 떠올렸다.

대재앙이 몰아친 땅에서도 새 생명은 태어났다. 그리고 사람들은 절망을 딛고 일어서고 있다. 이 병원에서 해일 이후 약 100명의 아이가 태어났다. 수간호사 사리야니는 "산부인과 병동에 약품이나 의료진이 부족한 때도 있었지만 산모들이 안전하게 출산하도록 최대한 배려했다"고 말했다.

희망의 싹은 스리랑카식 두레인 '사미티여'에서도 엿보였다. '사미티여'는 마을 사람들이 서로 어려움을 나누고 도움의 손길을 보태는 자치조직. 복구작업이나 구호품 배급이 이뤄지고 있는 곳에는 언제나 이 조직 회원들이 있었다. 구호단체 굿네이버스의 이종학 선교사는 "마을에 진료를 가면 사미티여가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그들은 몇 ㎞를 뛰어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종교를 초월한 재난 극복의 의지도 빛났다. 기독교 단체인 굿네이버스는 불안한 마음을 안고 100여명의 이재민이 있는 불교 사원으로 진료를 갔다가 70대의 고승이 "고맙다"고 정중히 인사하자 놀랐다. 이 나라 정부는 지난해 불교도가 기독교로 개종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을 만들려 했고 이 때문에 종교 간의 반목이 극에 달했었다. 굿네이버스에서 통역 봉사활동을 하는 현지인 란글러는 "나 역시 불교신자라 여기에서 일하는 게 좀 꺼림칙했지만 지금은 종교 간에도 무언의 평화협정이 맺어진 상태"라고 말했다.

스리랑카 마타라에서 천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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