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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렇게 살 수도 있구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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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숨을 쉬라, 미소 지으라, 그리고 평화롭게 걸으라." 베트남 출신 승려 틱낫한이 프랑스 보르도 지방에 만든 공동체 '플럼 빌리지'의 나무 팻말에 쓰여 있는 글귀다. 마음의 평화를 찾기 위해 대단한 처방전을 기대하며 이곳을 찾았을 사람들은 이 팻말을 보고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 혹여 실망스럽지는 않았을는지. 그러나 환경운동가·기자·공동체 생활인 등 아홉명이 둘러본 세계 13곳의 공동체도 플럼 빌리지와 별반 틀리지 않았다. 경쟁과 욕심으로 꽉 차있는 현대인들이 잊고 있던 '평범함'을 실천한다는 것이다.

1년전 『나를 찾아 떠나는 17일간의 여행』으로 세계 17개 공동체 체험기를 풀어놨던 한겨레신문의 조연현 기자는 머리말을 이렇게 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생각과 삶의 자세를 바꾸지 않은 채 기존의 탐욕 위에 마음의 천국까지 더해지기를 원한다. 몸만이 아니라, 마음까지 떠날 때 천국에 이를 수 있다. 이 자리에서 이 순간 소유와 관념과 욕망으로부터 떠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출가가 아닐까. 공동체성은 미지의 세계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고 원래 우리가 가지고 있던 이런 본성을 회복하는 것 아닐까."

하나 이렇게 똑같은 진리를 실천하는 곳이라면 저자들이 스리랑카·인도·미국·프랑스 등 방방곡곡을 찾은 것이 무의미했을는지 모른다. 게다가 방문 장소도 이번 책의 코디네이터였던 조기자가 과거 들렀던 곳과 겹쳐지기도 한다. 그러나 공동체가 평범함을 구현하는 방법은 흩어져 있는 지역만큼이나 다양하다. '틱낫한의 걷기' 말고도 배울만한 실천 방법은 갖가지였다. 수력·태양력 등 대체기술로 마을을 운영하는 영국의 매헨세스, 시위를 통한 정치참여에도 적극적인 미국의 트윈오크스 등. 또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1년동안 공동체를 경험하고 돌아온 이들의 감상도 천차만별이다. 명상법에 관심있던 사람, 공동체의 나눔 방식·운영 방식을 연구한 사람, 모두 백인백색이다. 공동체의 연락처와 찾아가는 법까지 나와 '체험기+가이드'쯤으로 여겨지던 이 책은 여러 저자가 그린 밑그림을 꿰맞추다 보면 어느새 공동체 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까지 던지는 심도깊은 모습으로 변모해 있다.

여하튼 인도 델리에서 30시간 기차를 타고, 버스와 택시로 4시간 이상을 더 달려야 나타나는 낙원 '오로빌'의 이야기를 듣는 기회란 흔치 않을 것이다. 1968년 붉은 황무지에 나무를 심으며 시작된 오로빌은 인구 5만명이 생태학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건설된 도시다. 그 안의 공동체는 다양한 형태다. 몇가구가 모여 무소유 공동체를 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개인 거주를 하며 식사만 함께 하는 공동체도 있다. 신입회원은 전세나 월세를 내고 집을 구하는 데, 돌아갈 때는 돈을 되돌려 받을 수 있다. 유기농법에 따라 농사를 짓고 소 똥으로 바이오 가스를 만드는 곳도 있다. 옷은 돈이 필요없는 가게, 프리 스토어에서 가져다 입을 수 있다. 종교화를 거부하기에 위빠사나 명상법, 기공, 티베트 명상법 등이 공존한다. 오로빌은 종교적 목적으로 강조되는 영성 공체가 아닌, 사상을 비롯한 모든 방면에 열려있는 실험 공동체인 것이다.

이 책은 공동체의 역사에 관해서도 자세히 알려준다. 산스크리트어로 '모두의 깨달음'이라는 뜻인 스리랑카의 사르보다야는 인도의 간디와 비노바 바베의 비폭력 정신에 감화받은 아리 박사가 벌인 운동이자 공동체의 이름이다. 그는 스리랑카의 민족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비폭력을 설파하고, 세상의 분노를 자비로 바꿔보려고 명상센터 '비쉬바 니케탄'을 지었다. 그래서 사르보다야 운동이 벌어진 지역에는 싱할라족과 타밀족이 섞여 있다. 우리나라 경기도 화성 산안농장을 포함해 전세계 40개 지역에서 실현되고 있는 무소유 공용일체 운동인 야마기시즘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식량난에 시달리던 일본에서 시작됐다. 창시자 야마기시 미오조가 "독특한 농사법과 함께 돈이 필요없는 사이 좋은 즐거운 마을을 만들어 보자"고 설득한 것이 큰 공명을 얻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공동체 탐방과 더불어 그곳의 역사, 철학 실천 방법을 일별해 보이면서 마음의 천국을 찾으려는 이들에게 평범한 처방을 다시 한번 일깨우고 있다.

홍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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