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프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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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많은 양의 석유를 실어나르기 위해 인류가 처음 고안해낸 방식은 석유를 작은 나무통에 넣어서 범선(帆船)으로 옮기는 것이었다. 나무통에 넣어진 석유가 처음으로 대서양을 건너 영국에 수송된 것은 1861년이었고 1886년에는 세계 최초의 벌크탱커(bulk tanker)가 개발됐다. 이후 유조선은 급속도로 대형화·고속화돼 오늘날엔 40만t을 넘는 초대형 유조선이 16킬로노트 이상의 속력으로 전세계에 산업의 에너지원을 실어나르고 있다.

유조선과 함께 석유 수송수단으로 중요한 것은 송유관이다. 인류 최초의 송유관은 1868년 미국에서 건설됐다. 당시 펜실베이니아에서 나무로 만든 둥근 파이프를 약 10㎞ 건설해 이를 통해 기름을 나른 게 처음이었다. 현재는 대구경(大口徑)강관의 제작이 쉬워져 수천㎞ 이상 되는 송유관의 건설도 문제가 없다. 현재 한반도 주변에서 논의되고 있는 파이프 라인망은 러시아의 이르쿠츠크 가스전에서 중국을 경유해 한국까지 이어지는 것과 사할린에서 바다를 건너 러시아 극동지방으로 연결된 다음 북한을 경유해 한국에 이어지는 루트가 있다.

물론 이는 아직까지 계획단계의 구상이다. 하지만 이르쿠츠크 가스전 사업을 주도하는 브리티시 페트롤리엄(BP)과 지난 1999년부터 사할린-2광구에서 상업적 생산을 시작한 로열 더치셸, 사할린 북섬 해저 가스전 사업을 관장하고 있는 엑손 모빌 등은 벌써부터 이 루트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석유 메이저들뿐 아니라 미국 정부와 북한도 여기에 관심이 많아 미국 에너지부는 동북아 지역에서 가스와 석유협력에 관한 연구 용역을 싱크 탱크에 줬고 북한은 네덜란드 기업이 주도하는 컨소시엄과 비공개 양해각서를 체결해 장차 사할린에서 러시아 극동을 거쳐 남한으로 이어질 파이프라인의 북한내 공사에 관한 배타권을 주기로 했다고 한다.

현재 석유 메이저들은 세계 최고 에너지 소비 증가국들인 한국·일본·대만이 인접한 사할린 해저유전의 경제성에 눈독을 들여 2005년께까지 모두 1백30억달러 이상을 이 섬에 투자할 계획이다.

석유와 천연가스가 석유메이저와 만나면 국제정치의 지도가 바뀐다는 말이 있다. 우리에게는 아직도 일제시대 징용 간 한인들이 망향(望鄕)의 꿈을 버리지 않는 비원의 땅으로만 알려져 있는 사할린에서 현재 동북아의 지도를 바꿀 대발견과 투자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김석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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