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순수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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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맥주는 역시 여름철이 제격이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요즘 시원한 맥주 한잔은 더할 나위 없는 청량제다. 맥주 없는 여름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맥주를 얘기하면서 독일을 빼놓을 수 없다. 독일은 자타가 공인하는 맥주의 나라다. 노천카페나 비어가르텐의 천막 아래서 맥주를 마시며 담소하는 모습은 여름날 독일 어디를 가도 만나는 정경이다. 한 사람이 연간 1백30ℓ쯤 마신다. 이처럼 많이 마시는데다 종류도 다양하다. 전국 1천2백여개의 공장에서 5천가지가 넘는 상표로 맥주를 생산한다. 웬만한 마을엔 맥주공장이 하나씩 있는 셈이다.

맥주의 종류를 본격적으로 얘기하면 좀 복잡하다. 독일 주세법은 알콜 도수에 따라 저농도 맥주(7% 이하)에서 강(强)맥주(16도 이상)까지 다섯가지로 나눈다. 그러나 이는 일반적 분류법이 아니다. 보통은 색깔·발효형태·원료를 기준으로 분류한다.

우선 색깔에 따라 헬레스(담색)와 둥클레스(흑맥주)로 나뉜다. 발효형태로는 라거로 불리는 하면발효주와 쾰른의 쾰시 같은 상면발효주로 분류된다. 독일 맥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하면발효주는 다시 복·둥클레스라거·헬레스라거·엑스포트·필스(필스너)·슈바르츠 등으로 나뉜다. 이 가운데 필스가 전체 맥주시장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체코의 플제니(독일명 필젠)에서 1842년 독일 양조업자 요제프 그롤이 처음 개발한 맥주로 호프맛이 강해 쌉쌀하다. 독일 술집에서 마시는 맥주의 십중팔구는 필스다.

건강이나 체질 등으로 술을 못하는 사람은 맥주 얘기에 화가 나신다고 ? 그런 분들에겐 맛은 그대로지만 알콜 도수 0.5% 이하인 무알콜 맥주가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맥주 종류가 다양하지만 맛 또한 기막히다. 비결은 '라인하이츠게보트', 즉 맥주순수령에 있다. 1516년 바이에른의 빌헬름 4세가 반포한 이 법령은 보리·호프·물로만 맥주를 만들도록 했다. 거의 모든 독일 맥주가 아직도 이 규정을 따르고 있다. 보리 대신 밀로 만든 맥주를 바이센, 혹은 바이첸이라 하는데 기포가 많아 톡 쏘는 맛이 일품이다.

국내 맥주업계에 때 아닌 순수논쟁이 한창이라고 한다. 보리를 1백% 써야 진짜 맥주라는 주장에 전분을 써야 쓴 맛이 없다고 맞서고 있다 한다.

글쎄, 우리 맥주 맛이 독일 맥주 맛과 다른 게 어디 보리 때문만일까. 소모적인 논쟁은 접고 차제에 본고장처럼 맛있고 다양한 맥주를 개발하기 위한 선의의 경쟁을 펼치기 바란다.

유재식 베를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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