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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지구촌 유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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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지난해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오전 스리랑카 콜롬보시. 100여명의 외교관 앞에 쿠마라퉁가 대통령이 나타났다. '쓰나미'의 피해를 설명하는 자리였다. 라자파크세 총리, 카디르가마르 외무장관도 배석했다. 작은 빈국이지만 외교관 앞에 대통령과 총리가 함께하는 건 극히 드문 일이었다.

피해는 심각했다. 스리랑카 국민총생산(GNP)에서 관광의 비중은 20%. 그런데 관광 기반이 거의 무너졌다. 회복에 4~5년이 걸린다. 국민 15%가 연안어업에 종사하고 그 중심은 12개 항구인데 그중 10개가 박살났다. 어선 80%가 파괴됐고 어민도 1만명 이상 사망했다. 영화 '딥 임팩트'에서처럼 북부에선 내륙 5㎞까지 바닷물이 밀려와 소금물로 적시는 바람에 농사도 못 짓게 됐다. 이 내용은 외교 전문을 타고 즉각 세계로 퍼졌다.

스리랑카가 적극 공개를 안 해서 그렇지 더한 피해도 있을 것이다. 피해는 고스란히 살아남은 자의 몫이다. 다행히 상처를 아우르고 남은 자를 다독이는 사랑의 손길이 지구촌을 감싸고 있다.

'지원금 사태'가 한 예다. 일본은 1500만달러에서 시작해 2000만달러-3000만달러-5억달러로 행진을 했다. 중국은 260만달러에서 6600만달러로 뛰었다. 미국도 1500만달러-3500만달러-3억5000만달러로 달렸다. 유엔이 10억달러로 잡았던 목표가 금세 20억달러를 넘었다.

국제사회에 뭘 내놓는 데 인색했던 한국의 변화도 인상적이다. 지원금이 60만달러에서 500만달러로 뛰었다가 5000만달러 규모로 늘었다. 1999년 8월 터키 지진 때 7만달러를 내 망신당했어도 굳세게 3만~10만달러 선을 고집했던 한국이었다. 500만달러는 지난 연말 국회 파국의 와중인데도 이해찬 총리가 당정회의에 직접 부탁해 번개처럼 마련한 것이다. 이례적인 속도 하며, 관련 예산이 100만달러에 불과한 점 등을 고려하면 신선한 변화다.

6일 인도네시아에서 열릴 '쓰나미 피해' 특별 정상회담에 대한 관심도 대단하다. 미국은 '대통령의 동생'인 플로리다주 주지사 젭 부시를 보내 무게를 싣는다. 중국은 부총리급에서 총리급으로 바꿨고, 일본도 외상을 보내려다 총리로 결론났다. 민간 지원도 앞을 다툰다.

지구적 재난 앞에 펼쳐지는 유례없는 드라마다. 그래서 지난해 지구촌은 갈등으로 점철됐지만, 2005년은 강렬한 인류애를 통한 유대의 한 해가 될 것이란 기대를 갖게 된다.

안성규 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