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대형 참사 부를 뻔한 서울 지하철 방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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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어제 서울 지하철 7호선 객차에서 발생한 방화 사건이 인명피해 없이 끝나 다행이다. 그러나 도시철도공사 측의 대응을 보면 문제점이 한둘이 아니다. 이른 아침이어서 승객이 적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대형 참사로 이어질 뻔했다. 승객들이 비상 인터폰을 울렸으나 기관사는 벨소리 외에 목소리는 듣지 못해 불난 사실을 모르고 전동차를 계속 몰았다고 한다. 긴급 상황시 가장 긴요한 인터폰조차 제대로 작동 않는 전동차가 수많은 승객을 태우고 이 시간에도 서울의 땅속을 다닌다고 생각하니 모골이 송연하다.

또 초기 진화를 소홀히 하는 바람에 객차 3량이 전소한 것은 어처구니가 없다. 진화 후 불길이 완전히 잡혔는지를 확인 않고 전동차를 운행해 피해를 키웠기 때문이다. 꺼진 불도 다시 보자는 초보적인 안전수칙조차 지키지 않은 것이다. 재난 발생 때마다 강조하는 기본 원칙을 무시하는 한 재난을 방지하는 일은 요원하다. 특히 유독성 연기를 뿜으며 전동차가 역 구내로 진입하는 데도 승강장의 승객들이 대피는 않고 쳐다보고 있었다고 한다. 피하라는 경고방송도 무시했다니 그 강심장에 놀라울 따름이다. 이 같은 안전불감증이 사라져야 대형 사고.재난 소식을 접하지 않을 것이다.

190여명의 생명을 앗아가고 200여명이 다친 대구 지하철 참사가 불과 22개월 전의 일이다. 그 후 정부와 지자체들은 갖가지 대책을 내놓고 다시는 대규모 재난이 없을 것처럼 큰소리쳤지만 이번에 또 허점이 드러나고 말았다. 객차의 의자를 스테인리스로 교체하고 바닥을 비롯, 내장재와 마감재를 불연재로 교체한다는 계획은 서울의 경우 27%가량 진척됐다고 한다. 화재시 인체에 치명적인 유독가스를 배출하는 '살인 객차'가 더 많은 것 아닌가. 예산 부족 탓만 하지 말고 승객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는 정책으로 전환이 절실하다. 또 지하철에서 범죄를 저지르려는 사람을 색출하고 감시할 항구적인 시스템을 경찰과 합동으로 구축해야 한다. 이에 앞서 안전요원이라도 보다 많이 배치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