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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정책盧-韓 갈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민주당엔 24일 노무현(武鉉)대통령후보의 햇볕정책 관련 발언을 놓고 주류 측 내부에서 찬바람이 일었다. 심상찮은 기운은 후보와 한화갑(韓和甲)대표의 조찬 회동에서부터 감지됐다.

햇볕정책 전도사를 자임해온 韓대표는 후보가 조찬장에 도착하기 전인 오전 7시30분쯤 기자들과 만나 "(후보는 햇볕정책의) 외형만 보고 발언하면 안된다. 공부하고 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후보가 도착하자 두 사람은 회동에 배석해온 정동채(鄭東采)후보 비서실장·이낙연(淵)대변인을 물리치고 20분 정도 밀담을 나눴다. 韓대표가 요구해서다. 전날 후보의 '발언 수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韓대표는 그뒤 민주당사에서 열린 고위 당직자회의에서도 "햇볕정책을 거론하려면 공부를 해야 한다"는 말을 거듭했다.'공부하고 말하라'는 계속된 언급은 후보의 햇볕정책 비판에 대한 앙금이 남았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해석됐다.

후보 측은 파문이 확산되자 뒷걸음질을 쳤다.

후보는 韓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나무(햇볕정책)의 가지를 하나 친다고 해서 나무를 죽인다고 해석해선 안된다.(전날 발언은)정치적으로 마음먹고 한 발언은 아니었다"고 물러섰다. 그러면서 햇볕정책에 대한 자신의 비판 발언을 언론의 확대해석으로 돌렸다.

후보 측근들은 인터넷 홈페이지에 "후보 발언을 거두절미하고 입맛에 맞게 보도했는데, 사실이나 제대로 전하라"는 글을 띄우면서 언론에 책임을 전가했다.

하지만 23일 일본 언론인들과의 간담회에서 나온 후보의 발언은 "햇볕정책은 한계에 봉착했다" "햇볕이란 용어를 바꿔야 한다" "대통령이 되면 새로운 정책을 펴겠다" 등이다. "북한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대해 국민정서가 더 이상 가져가기 힘든 상황으로 왔다" "대북한 관계 진행을 부분적으로 중단해야 한다"는 말도 했다.

이에 대해 비주류 측은 "정책이 한계에 달해 명칭을 바꾸자고 했고, 새로운 정책을 편다고 했다. 그게 어떻게 가지 하나 치는 거냐"면서 "걸핏하면 말을 바꾸고 그걸 언론에 전가하는 태도는 이해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

이런 가운데 정동채 후보비서실장은 "후보는 '햇볕정책이 아무 문제가 없다'는 청와대 측과 '완전히 폐기해야 한다'는 한나라당의 중간입장일 뿐"이라며 "정책의 근본을 부정한 것이 아닌데, 아무 수정없이 무조건 정책을 인정하란 말이냐"고 반문했다. 韓대표에 대한 불만으로도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이다. 다른 측근은 "지난 19일 국회 대표연설에서 韓대표도 후보처럼 대북지원 중단을 거론하지 않았느냐"고 지적했다.

강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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