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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최현 前 국립무용단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5면

지난 8일 7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한국무용가 최현(崔賢·본명 최윤찬)씨는 한국 창작춤의 개척자다.

그의 후배로 한국 남성춤의 맥을 잇고 있는 조흥동(趙興東) 한국무용협회 이사장은 "고인은 오로지 춤을 위해 산 분"이라며 애도했다.

최현씨는 부산에서 태어나 1946년 경남 마산에서 김혜랑을 사사한 뒤 우리 전통춤을 자신의 독창적인 춤사위로 체화해 무용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간암으로 타계한 그는 건강이 악화되기 전까지만 해도 술을 마시고 노는 것을 즐기는 낭만파였지만 작품에 대해선 대단히 엄격했다. 원로 무용평론가인 박용구(朴容九)씨는 이런 그를 '제 살을 뜯어먹는 완벽주의자'로 평했다.

고인의 대표작은 옛 선비의 고고한 자태를 그린 '비상(飛翔)'을 비롯해 '군자무''남색끝동''허행초' 등이다. '승무''살풀이' 등 전통무용을 섭렵한 뒤 자기 춤세계의 완성에 이른 '최현춤'의 백미로 꼽히는 작품들이다.

82년 崔씨의 안무로 마당놀이 '허생전'을 함께 선보였던 손진책(孫振策·극단 미추 대표)씨는 "그는 한국춤의 멋과 맛을 가장 잘 보여준 이 시대 최고의 춤꾼이었다"라고 말했다.

고인은 전통춤의 형태만을 모방한 채 멋과 맛을 낼 줄 모르는 요즘 무용가들에게 사표가 될만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그는 30년 이상 서울예원학교·서울예고 등에서 한국 무용계의 지도급 인사들을 많이 길러냈다.

숙명여대 박인자(朴仁子·발레 전공)교수는 "제자들을 자식처럼 사랑한 분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줄곧 자신의 춤 세계에만 몰두한 나머지 대를 이을 이렇다할 남성 무용가를 기르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95년에는 국립무용단 단장으로 임명돼 보다 큰 무대를 통솔할 기회를 만났으나 지도력 부족으로 도중에 사퇴하는 아픔을 겪었다.

부인인 한국무용가 원필녀(46)씨는 그의 제자다. 두 사람은 지난해 12월 부부 합동으로'비파연(琵琶緣)'을 공연해 화제를 뿌렸다.

崔씨는 50년대 중반 춤의 세계로 빠져들기 전 영화에 심취하기도 했다. 50년 고(故) 복혜숙씨와 함께 영화 '삼천만의 꽃다발'에 출연했고, 고(故) 김승호·허장강씨와 조미령씨 등 당대의 스타들과 '춘향전''시집 가는 날' 등에 주연으로 나왔다.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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