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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의 정치'속 김홍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김홍일 의원은 민주당을 떠나라는 압박을 받고 있다. 대통령 두 아들(홍업·홍걸)의 부패 탓에 6·13 지방선거에서 멍든 만큼 큰 아들인 金의원이 책임을 지라는 것이다. 그런데 金의원의 성적은 좋다. 무소속 돌풍이 분 호남에서 그의 지역구(목포)는 시장·도의원을 모두 당선시켰다. 쇄신파의 탈당 요구에 맞서는 버팀목 중 하나가 선거 성적표다.

쇄신파의 탈당 요구 논리

그의 정치적 목표는 지역구 챙기기에 관한 최고의 의원이다. 그리고 대통령에 대한 충실한 여론 전달 창구역할이다. 2000년 9월 한빛은행 사건 때다. 당시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현 청와대 비서실장)은 퇴진 압력을 받았다. 여론은 험악했고 민주당도 시끄러웠다. 朴장관은 "나는 결백하다. 왜 장관을 그만 두어야 하느냐"고 맞섰다. DJ도 바꿀 기색이 없었다. 그 무렵 金의원은 청와대에 갔다. 그리고 DJ와 이런식의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알려져 있다.

▷金의원=아버지. 朴장관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고 있어요. 무슨 조치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DJ=그에 대한 혐의가 드러난 것이 없지 않으냐. 일종의 모함일 수 있다. 신중하게 따져보아야 한다.

▷金의원=그 것(대출압력 의혹)이 국민들 오해일 수 있습니다. 그 오해를 나중에 씻더라도 일단 민심(장관직 사퇴)을 따라야 한다고 봅니다.

청와대에서 나온 뒤 金의원은 朴장관을 만난 것으로 전해졌다. 얼마 안있어 朴장관은 자진 사퇴했다. DJ의 신임이 확고한 만큼 사퇴하지 않을 것이란 권력 내부의 관측을 깼다. 金의원의 움직임이 朴장관 거취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金의원도 이런 얘기를 외부에 발설하지 않았다.

다만 당시 金의원은 민심을 있는대로 전달하는 충정으로 자신의 행동을 자평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권력 주변에선 대통령 아들의 독특한 영향력으로 파악했다. 충정과 영향력의 미묘한 차이가 클수록 사람들이 그에게 몰렸다. 그들 중에는 인사나 이권 특혜를 기대했고, 일부 구설수도 따랐다. 그러나 이런 유(類)의 접근이 있으면 金의원은 '아버지로부터 받은 정치수업 덕분'에 절제와 거부의 노하우를 갖고 있다고 믿었고, 조심했다.

집권 후반기에 들면서 DJ 앞뒤에 권노갑·박지원·신승남(전 검찰총장)·안정남(전 국세청장)·이수동(전 아태재단이사)씨 등 범 목포권 출신들이 포진했다. '형님, 아우'하는 분위기가 퍼졌고 권력 내부의 대통령에 대한 충성도가 올라가는듯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권력 내 알력이 추하게 얽히고 졸렬해지는 게 연고주의의 병폐다.

부패 게이트의 내막이 드러난 것은 권력 내부의 갈등 탓이라는 자조섞인 분석이 민주당 내에 있다. 검찰 내 호남 출신 수뇌부끼리 경쟁자를 낙마시키려고 서로의 약점을 활용하려다 결국 그들과 DJ정권이 치명타를 맞았다는 것이다.

그런 속에서 金의원은 두 동생의 비리와 탈선 가능성에 경고를 보냈다. 그러나 두 동생 주변에선 "우리들을 견제하려 한다"고 반발했다. 그리고 "형이 영향력을 독점하려는 의도"라고 갈등을 부추겼다.

충성경쟁이 내부 알력으로

그런 불화도 권력 무상의 기억으로 金의원에게 남을 것이다. 그의 탈당문제는 탈(脫)DJ의 차별화 조건으로 잠복해 있다. 차별화는 극적 반전의 감동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탈당 요구파 중에는 건강이 좋지 않은 金의원의 말을 놓치지 않으려고 귀를 기울이고, 눈 도장을 찍으려 안간힘을 썼던 의원들이 적지 않다. 때문에 그들의 주장은 권력의 배반, 나만 살겠다는 책임회피로 비춰진다.

金의원의 거취는 그의 선택에 달려있다. 지역구 주민의 몫이기도 하다. DJ와의 차별화 노선은 정권 말의 권력 다툼, 배신의 정치가 추하게 얽혀 있는 한 힘을 쓰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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