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교육계 충돌과 혼란, 대토론으로 풀어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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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대한민국 교육이 갈등과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고 있다. 진보 성향 교육감들이 정부의 주요 교육정책에 반기(反旗)를 들면서 정부와 진보 교육감 간 교육 충돌이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본격적인 민선 교육감 시대의 도래(到來)로 전환기를 맞은 한국 교육이 발전과 도약은커녕 대립과 갈등의 늪에 빠져 역주행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국가 교육정책이 지방 교육과 조화를 이룰 때 공교육 정상화와 교육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 지금처럼 정부 정책 방향이 진보 교육감의 교육철학과 신념에 부딪혀 사사건건 제동이 걸리고 교육 현장이 대결의 장(場)으로 변해서는 어림없는 일이다. 이제껏 겪어보지 못한 교육 충돌과 혼란이 한국 교육을 퇴보시키는 ‘교육 재앙’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정부와 교육감, 나아가 교육계 전체가 머리를 맞대고 해법을 찾아야 한다.

현재 정부와 진보 교육감 사이에 불거진 갈등의 핵심은 학업성취도평가와 교원평가, 학생인권조례 문제다. 이로 인해 이미 일선 학교와 학생·학부모가 혼란을 겪고 있다. 앞으로 국제중, 자율고, 특목고, 교원 징계, 수능성적 공개, 교장공모제, 방과후 학교, 평준화, 고교선택제 등 주요 사안마다 전선(戰線)이 형성될 공산이 크다.

13~14일 치러지는 학업성취도평가의 경우 전북·강원도 교육감이 응시 여부를 학생·학부모 선택에 맡기겠다며 사실상 거부한 상태다. 정부는 평가 거부 교사와 교장을 징계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교육감은 징계 요구도 거부하겠다며 극한 대립 양상을 보이고 있다. 초중등교육법에 근거를 둔 학업성취도평가는 학력 부진 학생과 학교를 파악해 집중 지원하고 수업방법 개선 등 교육정책을 세우는 데 필요하다. 이런 평가를 ‘학생·학교 줄세우기’라는 등의 이유로 거부하는 게 타당한 것인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진보 교육감들의 교원평가 무력화 시도도 안타깝다. 교사의 질을 향상시켜 교육 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다른 대안을 갖고는 있는지 묻고 싶다.

지금 벌어지는 교육 혼란을 방치해선 우리 교육에 희망이 없다. 먼저 정부와 교육감들이 대화와 타협으로 정책 혼선을 최소화해야 한다. 정부부터 보완이 필요한 정책은 교육감들과 협의해 고쳐나간다는 유연한 자세를 보여야 한다. 교육감들은 산적한 교육 문제를 독단적으로 해결하려는 자세를 경계해야 한다. 이념적 성향이나 교육철학의 실현도 법 테두리를 벗어나거나 공교육 정상화라고 하는 교육정책의 근간을 흔드는 쪽으로 가서는 곤란하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교육계 주도로 ‘교육 대토론’을 벌여 바람직한 교육 방향을 제시할 필요도 있다. 충돌하는 교육 사안별로 찬반 양쪽의 전문가·교수·교사·학부모 모두가 참여해 토론함으로써 국민이 무엇이 옳은지 판단할 수 있게 하자. 토론을 통해 사회적 합의에 근접한 교육 방향을 정부와 교육감들이 수용하도록 압박할 수도 있을 것이다. 미래의 희망인 학생들을 올바로 키워낼 국가 백년대계(百年大計)를 제대로 세우는 대토론을 지금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