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政·經 뒷걸음… 향기 잃은 香港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빈부 격차 책임져라!(貧富懸殊, 如何問責)"

홍콩 노동자들이 시위 때마다 외치는 구호다. 홍콩 행정수반인 둥젠화(董建華)행정장관이 지난주 새 내각을 소개하는 자리에도 노동자 연합단체는 어김없이 이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나타났다. 1997년 7월 1일 홍콩이 영국 식민지에서 벗어나 중국땅으로 돌아간 지 딱 5년이 흐른 지금 홍콩 사회는 전반적으로 우울하고 착잡한 분위기다. 명(明)보다는 암(暗)이 더 짙게 느껴진다.

정치·인권 분야에선 베이징(北京)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겨우 살아났던 경제는 지난해부터 다시 뒷걸음질하기 시작했다.이 과정에서 집값은 47%나 곤두박질쳤다. 실업률은 사상 최고수준인 7.4%(24만명)까지 치솟았다. 행정부에 대한 만족도는 20%대로 바닥세다.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으로 '대륙의 관문'으로서의 홍콩의 역할은 이제 끝났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이런 추세를 반영하듯 포천지 5월호는 '누가 홍콩을 원하는가(Who needs HongKong)'라는 기사에서 '홍콩 무용론(無用論)'까지 거론했다.

◇홍콩 덮은 대륙풍=중국에서 불어오는 '대륙풍'은 홍콩 사회 구석구석에서 쉽사리 감지된다.

홍콩 정부는 최근 미국 시민권을 가진 반체제 인사 해리 우(吳弘達)의 입국을 두차례나 거부했다. 지난달엔 반정부 활동을 벌인 혐의로 대학생 5명을 전격 기소했다. 홍콩 야당은 "베이징 중앙정부의 대행기구인 중앙연락판공실(中聯辦)의 장언주(姜恩柱)주임이 각료 인선을 좌지우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홍콩인들이 대륙에 두고온 자녀(일명 대륙자녀)들에 대한 거주권 판결은 '홍콩인이 홍콩을 다스린다(港人治港)'는 원칙이 무너진 대표적 사례다.

당초 홍콩 종심법원(대법원에 해당)은 "부모 중 한쪽이 홍콩 영주권을 획득한 뒤에 이들 부모가 대륙에서 낳은 자녀는 홍콩에 거주할 권리가 있다"고 판결했다. 대륙자녀들은 환호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였다. 홍콩 정부의 재심 신청을 받아들인 중국의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국회에 해당) 법사위원회는 1999년 6월 "부모 모두 영주권을 획득한 뒤 이들 부부가 대륙에서 '합법적 관계'아래 낳은 자녀에게만 영주권을 부여한다"고 결정했다. 종심법원의 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언론도 예전같지 않다.친중국계인 문회보(文匯報)·대공보(大公報)는 논외로 하더라도 과거 중국에 비판적 논조를 유지했던 명보(明報)와 영자지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SCMP) 등 권위지들도 중국 비판을 자제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반면 대만 민진당과 천수이볜(陳水扁)대만 총통에 대해선 비판 일색이다.

홍콩대학이 최근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78%가 "사회적인 환경이 5년 전과 차이가 많이 난다"고 답했다. 여대생 저우리사(周麗莎·23)는 "예전처럼 공정하고 독립적으로 법을 집행하지 않으면 홍콩의 번영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정치에 발목 잡힌 경제=홍콩 반환 뒤 곧바로 터진 아시아 금융위기는 홍콩 경제의 취약점을 정면으로 파고들었다.후유증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우선 부동산 가격은 반환 전의 반값에 가까운 수준으로 주저앉았다. 거품이 빠져나갔기 때문이다.한 부동산업자는 "원자폭탄을 맞은 듯한 충격"이라고 비유했다. 부동산으로 홍콩 최대의 부를 일궈낸 리카싱(李嘉誠) 창장그룹(長江集團)회장도 최근 "이제 부동산 업계의 사명은 끝났다"고 선언했다.

구체적인 가격을 보자. 부동산 거품이 절정에 달했던 98년, 노른자위 주거지역의 25평형 아파트는 7억~8억원대를 호가했다. 지금은 3억5천만원에 내놔도 찾는 사람이 없다. 반환 전 1만7천대를 웃돌던 항셍(恒生)지수(홍콩의 주가지수)는 요즘 1만대를 헤매는 형편이다. 결국 문닫는 기업이 속출하고, 실업률은 가파르게 오르고, 덩달아 소비가 얼어붙는 악순환이 거듭됐다.

문제는 경제침체가 외부요인 탓만이 아니라는 데 있다. 홍콩의 새 국제공항 첵랍콕 공항이 한 예다. 이 공항은 홍콩 반환 1주년 기념식에 맞춰 98년 7월 1일 개장됐다. 장쩌민(江澤民)중국주석이 새 공항에 내리는 첫 손님으로 기록됐다. 행사도 무난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그 다음부터는 대혼란의 연속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1주년 기념식에 맞추기 위해 개장 일정을 무리하게 앞당겼기 때문이다. 기념식 후 한달간 첵랍콕 공항에선 화물과 사람이 한데 엉키는 무질서가 계속됐다. 수백억 홍콩달러의 손해가 발생한 것은 물론이다. 경제가 정치에 발목 잡힌 대가를 톡톡히 치른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홍콩 정부는 중국에서 탈출구를 찾으려고 한다. 광둥(廣東)성의 광저우(廣州)·선전(深?)·주하이(珠海)를 잇는 주장(珠江)삼각주와 홍콩을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는 계획이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외부에서 해법을 찾는 데는 한계가 있다. 홍콩의 한 언론인은 "만일 홍콩의 법치주의와 탈(脫)중국화가 실현되지 않는다면 홍콩이라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는 평범한 거위로 전락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홍콩=이양수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