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과 눈물 18개월…'4강 신화' 영광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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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거스 히딩크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은 지난 1년반 동안 자신의 능력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다섯차례 월드컵 본선에 출전해 단 1승도 올리지 못하고 4무10패를 기록한 한국팀을 이끌고 4강이라는 대 위업을 달성했다. 눈에 보이는 성과 외에도 히딩크 감독은 축구를 통해 한국 국민을 하나로 통합하는 효과까지 선물했다.

◇'기회의 땅' 한국으로(2000년 12월~2001년 4월)

2000년 12월 17일 김포공항에 도착한 히딩크 감독은 18일 대한축구협회와 계약서에 서명했다. 히딩크 감독은 데뷔전인 1월 24일 홍콩 칼스버그컵대회 노르웨이전에서 2-3으로 패했으나, 다음 경기인 파라과이전에선 승부차기로 승리했다. 2월 8일부터는 두바이 4개국 대회에 출전, 홈팀 아랍에미리트(UAE)을 4-1로 꺾고 첫 90분 승리를 기록했으나 덴마크전에서 0-2로 패하며 '유럽 징크스'를 확인했다.

그러나 4월 이집트 4개국 대회에서 이란과 이집트를 각각 1-0, 2-1로 꺾고 우승, 국민의 기대를 한껏 끌어올렸다.

◇그의 별명은 '오대영'(2001년 5~9월)

월드컵 개막을 꼭 1년 앞두고 열린 컨페더레이션스컵(5월 30일~6월 10일) 개막전에서 히딩크호는 프랑스에 0-5로 참패해 세계 축구의 높은 벽과 한국 축구의 현실을 절감했다. 호주·멕시코를 꺾고 2승1패를 기록했지만 골득실차로 4강 진출에 실패했다. 일본이 준우승을 차지하면서 아픔은 더욱 커졌다. 그런 상황에서 대회 직후 휴가를 떠난 히딩크 감독은 복귀시한인 7월 7일을 넘겨 18일이 돼서야 돌아왔다. 그의 불성실을 질타하는 여론은 하늘을 찔렀다.

8월 유럽 전지훈련에서 체코를 맞아 또다시 0-5패의 악몽을 반복했다. 프랑스 월드컵에서 네덜란드 대표팀을 이끌고 한국을 5-0으로 대파하기도 했던 히딩크 감독은 '오대영'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끝없는 새 얼굴 찾기(2001년 10~12월)

10월 대구 전지훈련에서 히딩크호에 승선할 태극전사의 윤곽과 스리백 일자수비 등 히딩크호의 방향이 처음 드러났다. 멀티플레이어를 대거 중용하면서 수비의 안정을 엮어낸 히딩크 감독은 수비라인과 미드필드, 미드필드와 공격라인의 간격을 좁게 유지하는 '콤팩트 축구'와 공격수들까지 수비에 가담하는 '압박 축구'를 시도했다.

변화의 결과는 11월 프랑스 월드컵 3위에 빛나는 크로아티아와 1승1무를 기록하며 드러났다. 12월에는 본선에서 같은 조에 속한 미국을 1-0으로 물리쳐 월드컵 16강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

◇시련 속에 체력은 쑥쑥(2002년 1~2월)

히딩크호는 1월 초 미주 전지훈련에 나섰다. 미국 프로축구(MLS) LA 갤럭시와의 연습경기에서 당한 0-1 패배는 불안의 전조였다. 1승1무3패(1승도 승부차기승)라는 참담한 성적표는 선택한 시련이었다. 월드컵 개막에 맞춰진 히딩크 감독의 시간표에서 미주 전지훈련은 체력 업그레이드의 출발선이었다. 그러나 이를 파악하지 못했던 언론은 저조한 성적에 여자친구 문제까지 도마에 올려 히딩크 감독을 궁지로 몰았다. 심지어 일부에선 '감독 경질'을 입에 올리기까지 했다.

◇16강 희망(2002년 3~5월)

히딩크호는 3월 유럽 전지훈련을 통해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홍명보의 가세로 안정을 찾은 히딩크호는 튀니지·핀란드·터키 평가전에서 단 1실점도 하지 않고 1승2무를 기록했다. 홍명보를 축으로 김태영과 최진철이 가세하는 수비라인은 이때 완성됐다.

상승세는 귀국 후에도 이어져 월드컵 개막 직전 열린 프랑스 평가전 직전까지 중국·코스타리카·스코틀랜드·잉글랜드를 맞아 무패가도를 달렸다. 특히 주전들이 모두 나선 잉글랜드전 1-1 무승부와 프랑스전 2-3 석패는 선수들의 자신감을 한껏 끌어올렸다.

◇새로 쓴 한국 축구사(2002년 6월)

6월 4일 부산 아시아드주경기장. 황선홍·유상철의 축포 두발에 유럽의 강호 폴란드가 쓰러졌다. 한국이 월드컵 본선에 도전한 지 반세기 만에 거둔 첫승. 14일 한국 축구가 포르투갈을 꺾고 마침내 월드컵 16강에 진출한 인천 문학경기장은 한국 축구의 성지(聖地)로 거듭났다.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탄력이 붙은 히딩크호는 이탈리아와의 16강전에서 연장 골든골 역전승이라는 꿈 같은 승리를 거두고 8강에 진출, 세계를 놀라게 하더니 8강전에서 스페인과 연장 무승부 후 승부차기에서 승리, 4강까지 올랐다. 유럽 징크스가 1년반 만에 유럽 킬러로 바뀐 대 사건이었다.

장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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