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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태 섭 교수 <영동세브란스병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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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3면

영동세브란스병원 진단방사선과 정태섭(48)교수는 서울 도곡동 매봉터널 주변 아파트 어린이들에게 '별 보여주는 아저씨'로 통한다. 1996년 이래 지금까지 해마다 환자와 보호자는 물론 지역 주민들을 초대해 천체관측 행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올해 5월 3일에도 이 병원 야외 주차장에 망원경을 설치하고 별보기 행사를 가졌다.

96년 동네 꼬마들에게 취미삼아 행성(行星)보기를 가르치는 것으로 시작한 것이 지난해엔 7백여명이 참가했을 정도로 큰 행사가 됐다.

올해는 빗발이 날리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3백여명이 모여 새벽까지 정 교수의 설명을 들었다.

이화여대 천체관측 동아리 폴라리스 소속 학생들이 자원봉사로 참여해 정 교수를 거들었고 병원과 주변 독지가들로부터 모은 돈으로 참가자 전원에게 아이스크림을 선물하기도 했다. 어린이들은 망원경에 잡힌 목성을 보고 탄성을 질러댔다.

정 교수의 별 탐구는 중학시절부터 비롯된다. 공업고교 교장이었던 부친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기계 만지기에 익숙했던 터라 중학생 때 이미 4인치 반사 망원경을 직접 제작하기도 했다. 집과 병원에 천체 망원경 3대를 두고 성운(星雲)과 행성 등을 관찰한다.

과학책 보내기 사업도 벌이고 있다. 울릉도와 지리산의 중·고교 학생들에게 매달 개인적으로 기증받은 5백권의 과학잡지 '뉴튼'을 보낸다.

"과학교육의 경우 중·고교 때 1백만원만 들이면 대학 때 들인 1억원보다 훨씬 효과적입니다. 어릴 때 받은 과학적 영감은 물에 소금이 녹듯 체질로 스며들기 때문입니다."

그에겐 괴짜다운 구석이 있다. 수목원에서 본 소사나무 분재가 마음에 들어 값을 물었더니 30년이 된 나무이므로 30만원을 내야한다는 소릴 들었다는 것. 그는 분재를 산 뒤 전산화단층촬영(CT)을 통해 나이테를 찍은 결과 수령이 13년임을 밝혀내 절반 값을 돌려받기도 했다.

그는 99년 미국 뇌신경방사선학회지에 직경 1㎜의 작은 뇌동맥류까지 자기공명영상촬영(MRI)으로 진단해내는 기법을 선보여 주목받기도 했다. 인제대보건대학원 백수경 교수와의 사이에 1남1녀를 두고 있다.

그가 얼마나 다양한 취미의 소유자인지는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딸 인영양이 직접 제작한 그의 개인 홈페이지(www.tschung.pe.kr)로 가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화폐와 옛날 편지 수집, 삶은 계란 껍질에 그림을 그리는 에그 페인팅 등을 즐긴다. X선 촬영을 통해 본 가족들의 뼈 사진, 축구공을 발로 차는 순간의 X선 사진, 과일을 MRI로 찍은 사진 등 좀처럼 보기 힘든 유별난 사진들도 덤으로 볼 수 있다.

홍혜걸 의학전문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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