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열기 '권력 비리' 덮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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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국 축구의 월드컵 '4강 신화' 창조로 고조되고 있는 국민적 축제 열기가 정치권엔 어떤 영향을 미칠까. 12월 대통령선거를 앞둔 정치권에선 23일 향후 정국과 연관지은 다양한 해석과 전망이 나왔다.

각 정당은 대체로 "월드컵 열기로 형성된 국민적 열정과 에너지가 국민 통합의 계기로 작용할 것" "특정 정당이나 정파의 유·불리를 떠나 정치권 자체가 거센 변화의 압력을 받게 되지 않겠느냐"는 데는 일치했다. 그러면서도 8·8 국회의원 재·보선과 김대중 대통령의 사과로 급물살을 타고 있는 '청산정국'과 대선정국에 미칠 파장 및 이해 득실을 따지는 등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나라당은 "월드컵과 비리 청산은 별개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대선 때까지 권력 비리 문제를 계속 짚고 가야 하는 한나라당으로서는 이 문제가 월드컵 분위기에 묻히는 것이 별로 달갑지 않기 때문이다.

남경필(南景弼)대변인은 23일 "월드컵이 끝나면 국민은 차분히 뒤를 돌아보게 될 것"이라며 "우리나라가 한 단계 발전해야 한다는 여론이 생기면서 부정부패 청산을 강조하는 한나라당의 주장이 설득력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고위 당직자도 "청와대나 민주당이 월드컵 열기를 부정부패 문제를 희석시키는 데 이용하겠지만 국민은 분별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민주당은 "우리당으로선 월드컵 분위기에 묻혀 6·13 지방선거 참패나 당 내분이 비교적 주목을 받지 않은 게 다행"이라는 반응이다. 월드컵 대회가 없었다면 이런 문제들이 훨씬 더 부각됐을 것이며, 민주당에 대한 국민의 질책도 강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민영삼(閔泳三)부대변인은 "한국 축구의 질적 변화를 목격한 국민이 과거청산보다 새로운 리더십을 세우자는 쪽으로 여론을 모으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 당직자는 "중요한 것은 국민의 변화 욕구를 담아낼 수 있는 청산 프로그램의 내용"이라고 말했다.

월드컵 열기와 함께 인기가 치솟고 있는 정몽준(鄭夢準·무소속)의원에 대해서도 평가가 엇갈렸다. 민주당 의원들은 "鄭의원이 월드컵 후엔 정치인으로서의 행보를 적극 개시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나라당 쪽에선 "노풍(風·노무현 바람)이 광풍처럼 떴다 사라졌듯이 鄭의원의 바람 인기도 월드컵 대회가 끝나면 바로 잊혀질 것"이라고 했다.

이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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