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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은 축제… 왜 國運과 연결짓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2면

"월드컵과 관련해 최근의 전국민적인 길거리 응원은 그동안 억눌러왔던 개인들의 쾌락이 마음껏 발산된 것이다. 그래서 탈국가적이고 탈민족적인 성격이 강하다. 그런데도 언론은 이 열기를 자꾸만 국가의 운명 같은 것과 연관시키려 한다. 시민의 질서의식을 강조하는 것이 한 예다. 일상의 한계를 뛰어넘고자 하는 축제적인 성격을 예의범절이나 점잖은 코드로 한정지으려는 시도는 무리다."

문화개혁시민연대의 이동연(38·사진) 사무차장. 그는 가요의 질을 떨어뜨리는 TV의 가요순위 프로그램을 폐지하는 데 앞장섰고 최근엔 연예·오락 프로그램의 저질화 현상을 막기 위해 팬클럽과 함께 방송국 앞 항의집회를 조직하기도 한 미디어·문화비평가다. '붉은 악마' 회원인 그는 최근의 열기에 대해 관심이 많다. 특히 그가 속한 문화개혁시민연대는 다음달 9일 민주사회정책연구원과 공동으로 '월드컵은 우리 사회에 무엇을 남겼나'를 주제로 해 월드컵 평가토론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잔치 이후'를 대비하기 위해서다.

- 월드컵 보도가 국가주의에 치우쳤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유럽이나 남미에서도 월드컵은 국가라는 정체성과 연관시키지 않나.

"물론 그렇다. 월드컵이 국가대항전인 만큼 어쩔 수 없다. 그러나 한국의 미디어처럼 선수 가족·고아원·양로원·군부대 등을 찾아다니면서 축구 외적인 요인들을 끌어들여 일체화하는 경향은 찾아보기 힘들다. 축구 전문가들이 나와 축구 자체에 대해 이야기하고 축구 자체를 즐기는 성향이 훨씬 강하다.

- 앞으로 이런 열기를 어떻게 전환해야 하나.

"한국의 응원을 보면 에너지가 폭발하기는 하는데 뭔가 몸에 밴 에너지는 아니다. 아마도 자발적 카니발 문화의 경험이 적기 때문일 게다. 구미에선 주말이면 공원이나 광장에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여 서로 공유하는 즐거움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바깥으로 나오기보다 밀폐된 공간, 즉 노래방이나 PC방, 어두침침한 술집으로 모이는 걸 더 자연스러워 한다. 실내에 갇힌 문화였던 것이다. 이번 경험은 과거에 없던 것인 만큼 무척 소중하다. 이를 광장으로 끌어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인사동 같은 곳을 평일에도 차 없는 거리로 만들고 광화문 일대를 시민광장으로 조성하는 작업이 긴요하다."

이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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