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정권이 겨우 반환점을 도는데 이런 난맥상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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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명박 대통령 임기가 반환점(8월 25일)에 접어들면서 국정(國政)의 난맥상이 연출되고 있다. 권력의 내부와 내부가 부닥치고, 여당과 야당의 폭로전이 치열하다. 여기에 7월 28일 재·보선과 7월 14일 한나라당 지도부 경선이 겹치면서 사안과 사안이 칡넝쿨처럼 얽히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정권의 인적 쇄신은 답보 상태여서 상황의 교통정리가 늦어지고 있다. 천안함이라는 국가안보 중대 사태가 진행 중이고 한·미 서해훈련에 대한 중국의 위협이 등장하는 등 나라 안팎으로 도전이 이어지고 있다. 정권은 겨우 반환점을 도는데 이렇게 권력의 요동현상이 발생하니 앞날이 걱정이다. 집권세력과 야당은 차분히 상황을 정리해서 민생의 안정에 에너지를 쏟아야 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건 의혹을 생산적으로 해소하는 것이다.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査察) 파문은 영포목우회 논란을 넘어 이제는 ‘선진국민연대’라는 이명박 후보 대선 외곽조직까지로 확대되고 있다. 선진국민연대 대변인 출신인 정인철 청와대 기획관리비서관이 정기적으로 금융권과 공기업의 최고경영진과 회합을 가졌으며 인사 청탁과 자금지원 요청 같은 민원이 선진국민연대 측과 이들 사이에 오고 갔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선진국민연대 인사들이 KB금융 회장 인선(人選)에 개입했다는 주장도 있다. 영포목우회와 선진국민연대 파문은 이들을 중심으로 한 세력을 다른 세력이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이른바 ‘권력투쟁설’이다.

정권은 우선 ‘권력 사조직의 월권(越權)·이권 개입’ 혐의에 대한 의혹을 밝혀야 한다. 청와대 내부 조정업무를 담당하는 비서관이 왜 공기업·금융권 최고경영진을 주기적으로 접촉했는지, 총리실의 사정담당기관이 왜 청와대의 관련 부서(민정수석실)가 아니라 고용노사비서관에게 업무를 보고했는지 규명해야 한다. 이 같은 궤도 이탈과 업무 혼선이 ‘권력의 사유화’라는 논란을 부르는 것이다.

민주당 지도부는 여권 내부의 제보라며 ‘여권 내 권력투쟁’설을 제기하면서 각종 의혹을 ‘국정농단 게이트’로 몰아붙이고 있다. 그러나 증거가 없는 의혹 제기는 정치공세에 불과하다. 근거 없는 의혹은 사회 불안을 야기하고 권력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조장한다. 특히 마땅한 근거 없이 ‘영포게이트’라고 공격하는 것은 해당 지역 주민과 출신 인사들의 명예를 훼손할 염려도 있다. 야당은 합리적인 선을 지켜야 의혹 제기에 대한 신뢰를 확보할 수 있다.

한나라당 조전혁 의원은 어제 “민간인 불법사찰 피해자인 김종익씨가 옛 KB한마음(현 NS한마음) 대표로 재직하면서 노무현 정권 실세들을 위한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제보를 한 거래업체가 제공한 입출금 통장내역 등을 증거자료로 제시했다. 김종익씨에 대한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직권남용 혐의와는 별개로 이런 의혹은 사실 여부가 규명돼야 한다. 현재 수사를 진행 중인 검찰은 의혹이 사실인지, 범법 혐의는 없는지 조사할 필요가 있다.

정운찬 총리의 진퇴를 둘러싸고 청와대와 총리실 참모들 간에 알력(軋轢)이 있다는 파문도 국정의 혼선을 가중시키고 있다. 정 총리는 세종시 수정안을 실현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수정안 부결로 그의 총리직 수행 동력에 상처가 생긴 게 불가피하지만 물러나더라도 그가 더 이상의 상처를 입는 일은 없어야 한다. 청와대의 성숙한 대처가 요망된다. 이 대통령은 요즘 번민 속에서 난맥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최종적으로 메스(수술칼)를 집어야 하는 의사는 대통령이다. 다른 이가 해줄 수 없다. 대통령은 신속하게 상황을 정리하고 하반기 출발을 위한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