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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잉충성은 자해행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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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일각에선 블랙리스트 형태는 아니더라도 그녀를 배제하려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 근거로 KBS 김인규 사장이 임원회의에서 그녀가 다큐멘터리의 내레이터를 맡은 것을 놓고 부적절하다고 지적한 점을 들고 있다. 그녀의 목소리가 출연한 작품은 서울 종로 기계공구 골목을 다룬 것이었다. 전혀 정치적이지도 않고, 전문적이지도 않은 프로그램이었다. 그냥 서울의 옛 정취를 떠올리게 하는 편안한 다큐멘터리였다. 프로그램 담당자도 서민적 이미지의 그녀가 어울린다고 판단해 내레이션을 맡겼을 것이다. 하지만 김 사장의 발언이 알려지자 김미화의 KBS 출연은 앞으로 당분간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사장이 목소리 출연까지 언급하는데 그녀에게 프로그램을 맡기겠느냐는 것이었다.

김제동이 방송 프로그램에서 잇따라 하차했을 때도 비슷한 논란이 제기됐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제 때 사회를 봤기 때문에 현 정권에 찍혔다”는 말이 나왔다. 방송사 측에선 낮은 시청률과 높은 출연료 등을 교체 이유로 들었지만 비난 여론이 높았다. 오죽하면 한나라당 진성호 의원까지 아쉬움을 나타냈을까. 진 의원은 “김제동은 노 전 대통령 노제의 사회를 봤지만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 때도 사회를 봤다. 여야나 좌우의 관점에서 벗어나 국민이 좋아하는 방송인”이라고 했다.

개인적으로 견해차가 있겠지만 나는 김제동·김미화가 자질이나 인기 면에서 방송에서 하차할 대상이 아니라고 본다. 김제동은 신문과 책을 많이 읽는 연예인으로 유명하다. 그의 말은 재치 있으면서 수준이 있다. 김미화는 어려운 시사 뉴스를 쉽게 전달하는 능력이 있다. 저녁에 택시를 탈 때마다 그녀의 라디오 프로그램을 자주 접했다. 한 택시기사에게 “김미화 프로그램이 뭐가 좋으세요?”라고 물은 적이 있다. 그 기사는 “일단 쉽잖아요. 김미화는 전문가와 통화하다 어려운 말이 나오면 ‘무식해 잘 모르겠는데’라며 대신 물어줘요”라고 대답했다.

사실 여부를 떠나 많은 네티즌은 이들의 방송 하차 논란을 놓고 현 정부까지 싸잡아 공격하고 있다. 유신정권 시절에나 볼 수 있는 탄압이라는 것이다. 만의 하나 이들의 정치적 색깔을 이유로 방송사 고위층이 압력을 행사했다면 이는 과잉충성이다. 이로 인해 여론이 나빠지면 결국 이 정권이 해를 입게 된다.

국무총리실 이인규 전 공직윤리지원관의 민간인 사찰이 여론의 집중 포화를 맞고 있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공무원들의 비리를 캐는 곳이다. 민간인의 개인 블로그에 올라온 글을 뒤질 정도로 한가한 조직이 아니다. 이런 조직이 나서 은행에 압력을 넣고 경찰에 수사하라는 공문을 보냈다. 현 정부를 음해하는 공직자를 솎아 내겠다는 충정에서 비롯됐을지 모르지만 이 또한 과잉충성이 빚은 자해행위다.

정철근 사회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