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리건 태풍 비켜갔다" 잉글랜드 승리로 난동 없이 끝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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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태풍이 미풍으로 바뀌어 삿포로를 스쳐 지나갔다'.

잉글랜드-아르헨티나전으로 훌리건 난동을 걱정했던 일본 삿포로는 8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날 오전 삿포로 시내는 조용하고 약간은 적막한 느낌마저 들었다.

전날 경기에서 승리한 잉글랜드 응원단이 시내 유흥가인 스스키노에 모여 큰 소리로 노래하고 춤춘 것 외에는 간밤에 아무 일도 없었다. 이들 숫자도 몇백명에 불과할 정도였다. 오히려 일본의 젊은 남녀들이 더 신명나 어울렸다.

삿포로는 지난해 12월 1일 월드컵 본선 조 추첨에서 이들 두 팀이 배당되자 바짝 긴장했다. 수천명의 훌리건이 몰려와 난동을 피우고 도시 전체를 마비시킬지 모른다는 얘기도 나돌았다. 그래서 삿포로시는 훌리건 격리용 선박 형무소를 바다 위에 띄우고, 외국인 손에 맞는 초대형 수갑을 준비하는 등 부산을 떨었다.

삿포로시의 한 관계자는 "전시를 방불케 하는 대책을 마련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규모 충돌을 우려했던 오도리 공원은 영국인과 아르헨티나인, 그리고 일본 사람이 마음을 터놓고 교류하는 평화의 광장이 됐다. 심하다 싶을 정도로 철저한 안전 대책이 사고를 사전에 방지했다는 분석이다. 잉글랜드 응원단에 대한 세계 언론의 집중적인 감시도 한몫 했다.

삿포로는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전 세계에 도시를 홍보하는 기회를 얻었다. 눈 축제와 겨울 올림픽 등 눈과 얼음의 도시로만 인식됐던 삿포로가 '깨끗한 환경의 사계절 관광 도시'로 부각된 것이다.

삿포로 돔은 '축구장을 공중에 띄워 실내로 집어넣는' 기발한 발상으로 세계인이 부러워하는 명물이 됐다. 잉글랜드팀의 에릭손 감독은 "뙤약볕도, 바람도 전혀 없다. 선수들의 경기력을 1백% 발휘할 수 있게 해주는 경기장"이라고 극찬했다.

㈜삿포로 돔이 위탁 경영하는 이 경기장은 연중 J리그와 프로야구·콘서트 등 각종 이벤트 등을 통해 흑자 경영이 가능할 전망이다.

시내에서 만난 한 택시 기사는 "삿포로에서는 이제 월드컵 경기가 끝나 시원섭섭하다"고 했다. 훌리건 난동이 없는 성공적인 대회를 위해 온갖 불편을 참아온 시민들이 느끼는 감정으로 들렸다.

삿포로=정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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