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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성폭행 당했을 때 눈물은 금물 … 잘 대응했다, 안심하라고 다독여줘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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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아이가 성폭행을 당했을 때 부모가 먼저 당황하면 안돼요. 눈물도 보이지 마세요. 부모가 침착하지 않으면 아이는 자신이 잘못해 큰 일이 났다고 생각하니까요.”

지난 2일, 서울 신대방동 보라매원스톱센터에서 만난 정은주(41·서울청 여청계 소속 경위·사진) 팀장은 아동 성폭행 대처 요령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했다. 정 팀장은 성폭행 피해자를 돕는 이곳에서 1년 반 동안 근무하면서 수십 명의 피해 아동을 만났다. 최근엔 김수철 사건의 피해 아동을 조사하기도 했다.

올해로 경찰 생활 23년차인 그는 서울청 강력계에서 12년간 성폭행범을 잡았다. 2008년 12월 이 센터가 개소할 때 자원했다. 그는 “아동이 여러 번 진술을 하면 2차 피해를 입을 수 있어 녹화를 한다”며 “조사할 때 아동 전문가가 동석하기도 하고,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인형을 이용해 피해 사실을 설명하는 등 최대한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주려고 한다”고 했다.

전국 18곳에 설치된 원스톱센터는 성폭행 피해자에게 의료지원부터 상담·수사·법률 지원까지 한번에 해주는 곳이다. 여경·사회복지사·간호사가 365일, 24시간 대기한다. 병원과 연계돼 바로 수술을 할 수도 있다. 보라매센터는 매달 100명 안팎의 피해자가 찾는다. 그중 13세 이하는 10%, 19세 이하는 50% 정도다. 모든 지원은 무료다. 정 팀장은 “과거에 경찰서, 병원, 상담소를 찾아다녀야 했다면 이곳은 길어도 4~5시간이면 모든 지원이 완료된다”고 설명했다.

그가 이곳에서 일하면서 과거 강력계 형사 시절 후회되는 점이 하나 있다. “가해자만 잡을 것이 아니라 피해자 사후관리에 조금 더 신경 쓸걸”이라는 아쉬움이다.

그만큼 피해자의 고통이 평생 안고 가야 할 짐이라는 것을 절실히 느꼈기 때문이다.

김수철 사건이 터졌을 때는 30년 전에 성폭행 당했다는 사람이 전화를 했다. “어릴 때는 성폭행인지 몰랐다가 언론을 보고 깨달았다”며 상담 요청을 해온 것이다. 그는 “한 피해 아동의 엄마는 아이가 볼까 봐 수돗물을 틀어놓고 매일 울고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 성폭행 사건 이후 아이뿐 아니라 가족 전체에 위기가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정 팀장은 “성폭력 피해를 보았을 때 부모의 초기 대응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침착하게 잘 대응했다고 칭찬해 주고, ‘이제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너는 안심하라’고 다독여줘야 아이가 진술조사에 잘 응할 수 있다”고 했다. 또 부모가 아이를 데리고 가해자를 찾아간다거나 피해 사실을 구체적으로 물어보면 후에 재판 과정에서 불리할 수 있다. 판사가 부모의 진술이 아이의 진술을 오염시켜 진술 자체의 신뢰도가 떨어진다고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아이들은 성폭행을 그저 ‘나쁜 일’로만 인식한다. 자라면서 알게 될 텐데 그때 숨기지 말고 심리치료와 성교육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원스톱센터에서 지속적인 사례관리를 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상담사가 부족해 초기 피해자 대응만으로 벅차기 때문이다. 정 팀장은 “지금 4명의 상담사가 주·야간 근무를 돌아가면 맡고 있는데, 좀 더 인력을 늘려 부모와 아동의 사후관리까지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김효은 기자

아이가 성폭행을 당했을 때는 이렇게

-“침착하게 잘 대응했다”고 칭찬하고 아이를 우선 안심시킨다.
- 부모가 울거나, 아이의 행실을 탓하지 말라. 아이가 놀라 진술조사에 응하지 않을 수 있다.
- 피해 사실이나 가해자가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묻지 마라.
- 성폭행은 시간을 지체하지 말고 경찰이나 원스톱센터에 즉시 신고한다.
- 아이를 씻기거나 옷을 갈아 입히지 않는다. 증거가 훼손될 수 있다.
- 아이에게 지속적인 상담치료와 성교육을 시켜야 한다.
- 보호자도 함께 심리치료를 받으며 충격을 극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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