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는 BC1200년부터 존재" 통설 뒤엎는 파격 신라史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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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고대신라의 존재는 기원 전 12세기께 촌장사회 형성기를 상한으로 이후 2천년을 유지했다." "일제의 연구관행을 받아들인 해방 이후 한국의 실증사학계는 신라 역사의 앞부분인 4세기 초까지를 소국들이 독립해 연맹을 이뤘다는 삼한론으로 채웠다. 이는 내물왕 이전 신라 역사를 은폐함을 의미한다. 유감스럽게도 이런 견해가 각종 한국사 개설서의 뼈대가 됐다."

『신라의 역사』에 보이는 파천황(破天荒)의 서술은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이유는 저자의 표현대로 "제로 베이스에서 새롭게 읽은 신라사"가 사학계의 통설과 너무도 다르기 때문이다. 얼핏 들으면 쇼비니즘에서 출발한 아마추어 재야 사학자들의 '허풍선이 고대사'와 닮았다. 그러나 저자는 정통학자이다. 다만 『화랑세기』를 위서(僞書)로 보지 않는 등 연구방법론이 달라 사학계의 이단아로 알려졌을 뿐인데 이번 파격에 파격을 더한 통사 서술에서 자신의 방법론을 적용했다는 점에서 한판 고대사 논쟁을 부르고 있다.

서강대 사학과 교수로 있는 저자는 고대사 접근 자체가 입체적이다. 고대사를 공부한 뒤 유학(미 캔자스주립대)과정에서 인류학을 추가로 연구했기 때문에 통합적 고대사 연구방식을 전개한다. 문헌에 코 박지 않고 고고학 자료를 병행하는 것은 물론이고, 인류학·사회학의 이론을 토대로 한 비교사학적 방법을 동원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삼국사기』건국신화에는 신라의 국가형성에 대한 여러 사실이 들어 있다. 사로국 형성 이전의 촌장사회, 6촌을 통합한 사로국의 형성과 그 요인들 신라 역사의 구조적인 문제를 밝힐 수 있다. 문제는 신화 속의 연대를 그대로 믿기 어렵다는 점이다.… 아무리 많은 자료를 확보하더라도 신라의 역사를 해명할 관점이 없으면 아무런 성과도 나올 수 없다. 여기서 비교사학적 방법이 필요한데, 비슷한 정치발전 단계에 있었던 다른 나라의 역사를 통해 신라 역사의 무엇을 밝힐 것인가 하는 질문을 얻을 수 있다."

따라서 이번 책은 "지난 20세기 연구관행을 떠나 새로운 마당에서 역사를 재구성한" 작업이라는게 저자 자신이 내린 정의다. 시대구분·용어의 선택 등에서 기존 역사서와 다른 것도 그 때문이다. 조금 차이가 있다기 보다는 천양지차이다. 시대구분에서 현행 국사교과서와 정면에서 부닥친다.

'삼국통일' '후삼국' 등의 용어도 용도폐기된다.신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것은 사실이나 고구려 영토까지 장악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교수는 '통합 삼한(三韓)'이라는 용어로 대체했다. 따라서 통일신라라는 용어는 '대신라'로 바뀌고 있다. 같은 용어를 구사하더라도 정의는 바뀌는 것도 있다. 골품제나 화랑도 등이 그것이다. 기존 교과서는 골품제를 "혈연에 따라 사회적 제약이 가해지는 것"으로 서술하고 있다. 이와 달리 이 책에서는 골품제의 편성은 종족·거주지·사회적 진출 등에 따라 매우 다양했음을 밝히고 있다. 화랑도 역시 '원시사회 청소년집단'으로 파악하지만, 이 책은 보다 광범위하다. 화랑도는 신에게 제사지내는 선도(仙徒)에서 기원했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면 이 책은 왜 이렇게 기존 신라사와 다를까? 저자는 국내 학계가 비판 없이 의존해온 사료인 중국의 『삼국지』한도를 무시한다. 대신 『삼국사기』기록을 중심으로 재구성을 한다.

이번 책은 분명 엄격한 학술서이면서도 기존 역사서와 달리 서술이 탄력적이어서 그런지 읽는 재미도 수월찮다. 하지만 파천황의 서술은 거의 '도발'이기 때문에 심각한 논쟁도 불가피해 보인다. 『신라 국가형성사 연구』 『한국의 초기국가』 『화랑세기로 본 신라인 이야기』등 저술과 함께 역주해를 붙인 『화랑세기』등의 저술을 펴낸 이교수의 공개적 도발을 학계가 어떻게 받아들일까 궁금하다.

조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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