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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그 후 … 진한 감동 뒤에 남는 아쉬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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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6월 한 달은 남아공 월드컵 축구로 온 나라가 즐겁게 지냈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생각해보면 이번 월드컵을 통해 “역시 국민을 즐겁게 하는 것은 스포츠밖에 없다”는 말을 실감한 것이 사실이다. 우리들은 그간 세종시, 4대 강, 천안함, 나로호, 성범죄 … 등으로 많이 지쳤었다. 그래서 ‘최초 원정 16강’의 목표를 내건 월드컵에 희망을 걸었다.

거리는 다시 붉은 물결이고 밤을 잊은 듯 아파트촌은 불을 밝혔다. 치킨집, 맥줏집, 피자집은 전화가 불통될 지경이었고, 경기가 끝났어도 길거리는 승리를 좀 더 만끽하려는 젊은이들로 넘쳐났다. 장안의 화제는 온통 축구뿐이었으며 마치 축구가 세상을 지배하는 듯했다.

한 민간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월드컵 출전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이 확정되면서 우리나라는 1조8000억원에 달하는 경제적 효과 외에도 1조3500억원의 국가 브랜드 이미지를 얻은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자산은 정치적, 이념적, 세대 간 벽을 녹이는 멜팅 폿(용광로)적 역할과 선수·응원단에서 보듯이 젊은 세대들의 거침없는 자신감 고취다.

이러한 엄청난 성과에도 불구하고 진한 아쉬움이 남는 것은 왜일까. ‘평균으로의 회귀’라는 말처럼 며칠 못 가 우리는 그 감동을 잊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며칠 지나면 K-리그는 여전히 맥 빠진 분위기이고 학교 체육시간은 입시교육에 밀려 찬밥신세가 된 것이 현실이다. ‘우생순’의 핸드볼도, 피겨스케이팅도, WBC 야구도 반짝 국민적 관심사였을 뿐 또다시 그들만의 힘겨운 삶을 지탱한다. 인프라도, 행정적 지원도, 국민적 관심도 언제 그랬느냐는 식이다.

반짝 지원과 관심은 단기적으로는 목표 달성이 가능하겠지만 긴 안목에서는 오히려 역기능일 수도 있다. 맹자의 이야기를 하나 소개해 보자. 송나라의 어떤 농부가 모를 심었는데 그 모가 좀처럼 잘 자라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빨리 자랄까 하고 궁리한 끝에 손으로 뻗게 해주기로 했다. 그래서 모를 하나씩 뽑아서 늘여주었다. 일을 마친 농부가 집으로 돌아와 말했다. “아, 피곤해. 모가 하도 작아서 잘 자라도록 도와주고(助長) 왔지.” 집안 사람들이 놀라 논으로 뛰어가 봤으나 모는 이미 전부 말라 죽어 있었다. 성과만 바라보는 단기간의 조장은 필경 무리가 따르게 마련이다.

우리나라 스포츠가 선진국처럼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병역특례, 체육연금 등 금전적 보상도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체육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과 지원, 국가의 장기적인 정책이 절실한 실정이다. 한때 스포츠는 기능주의적 시각과 갈등론적 시각으로 때로는 조장되기도, 때로는 외면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남아공 월드컵이나 지난 밴쿠버 겨울올림픽에서 나타난 국민적 스포츠 열기는 이전과는 사뭇 다르다. 남성들 못지않게 여성들의 관심도 전례 없이 높아졌고, 승패보다는 그 과정을 즐기면서 에너지를 발산하는 광경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젠 스포츠 자체의 경기력, 인프라 지원과 함께 스포츠 문화를 새롭게 조명하는 경기외적인 측면도 심도 있게 연구해야 할 시점이다.

임병태 체육언론인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