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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Focus] 빌 게이츠와 함께 세계 빈곤 퇴치 운동 도영심 이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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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테드 터너 AOL타임워너 부회장, 노벨 평화상 수상자 무함마드 유누스…. 지난달 23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발표한 ‘밀레니엄 개발 목표(MDG)’ 협력그룹(Advocacy Group) 명단이다. MDG는 2015년까지 세계 빈곤 수준을 절반으로 줄이는 것을 골자로, 유엔 회원국들이 2000년에 세운 목표다. 16명의 위원 중 한국인이 한 명 눈에 띄었다. 도영심 유엔세계관광기구 산하 스텝재단(UNWTO ST-EP) 이사장이다. 그룹은 빈곤 및 질병 퇴치, 교육 보급사업에 기여해 온 인사들로 구성됐다. 이들은 지난 10년간의 MDG 활동을 점검하고, 앞으로 5년간의 활동방향을 논의한다. 지난달 30일 서울 다동의 스텝재단 사무실에서 도 이사장을 만났다. 그가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 돌아온 다음 날이다. 그는 1시간30분 동안 열정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단어나 문장을 영어로 말하고, 이어 한국말로 설명하는 그의 말 습관은 상황을 더 생생하게 묘사하는 힘이 있었다.

글=박현영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

#그녀의 일, 그리고 아프리카

● MDG 협력그룹에서 어떤 역할을 맡았나요.

“각자의 ‘필드’에서 하던 역할을 계속하게 됩니다. 나는 카타르 왕비와 함께 초등 교육을 확산하는 임무를 맡았어요. 스텝재단이 아프리카에 도서관을 세워주는 ‘고맙습니다, 작은 도서관(Thank You Small Library)’사업을 꾸준히 해 온 결과예요. 2008년부터 책 2000~3000권이 들어가는 도서관 73개를 세웠는데, 그걸 평가해 준 것 같습니다.”

스텝(ST-EP:Sustainable Tourism-Eliminating Poverty)재단은 ‘지속 가능한 관광을 통한 빈곤 퇴치’의 약어로 UNWTO산하 전문 기관이다. 2006년 본부를 한국에 유치했다. 관광산업을 일으키고 청소년을 교육해 빈곤을 퇴치하는 사업을 주로 한다.

● 왜 아프리카의 관광산업인가요.

“외화 벌이가 되거든요. 고용 창출도 하고요. 기존 경제대국은 산업을 통해 부를 축적했지만, 아프리카는 그게 거의 불가능해요. 대신 천혜의 자연과 야생동물, 킬리만자로부터 빅토리아 폭포까지 관광자원이 있지요.”

● 어떤 사업을 합니까.

“관광객들이 민속마을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도와요. 마을 앞에 시냇물이 있으면 다리를 놓아줍니다. 주민들이 만든 민속품을 사주면 여기 경제를 확 바꿔 놓는 거예요. 하루에 1달러 미만으로 사는 사람들에겐 단 10달러만 생겨도 거금이지요. 공예품을 만들어 팔 수 있도록 여성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마이크로 크레디트 사업도 해요. 40유로(약 6만원)를 빌려주면 재료를 사서 물건을 만들어 팔고, 6개월 뒤 6%의 이자를 갚으면, 또 돈을 꿔줘요.”

● 효과가 보이나요.

“애 엄마가 처음 돈을 빌리러 올 때는 신발 신은 애들이 하나도 없어요. 그런데 이자를 갚으러 올 때 보면 애들이 신발을 신고 있어요. 엄마가 돈을 벌면 아이들 밥을 먹이고, 신발을 신기고, 학교에 보냅니다.”

● 원조사업에서 원칙이 있나요.

“사람의 능력 배양에 초점을 맞춰요. ‘1+1=2’인 것도 모르는 엄마들을 가르쳐요. 중요한 건 우리가 직접 하지 않고 그곳 사람들에게 모든 걸 맡긴다는 거예요. 정부와 민간단체가 도서관을 세울 곳을 선정하고, 원하는 책도 고르게 합니다. 그래야 사후관리를 열심히 하니까요. 책 목록을 정하는 마을 회의에는 추장부터 어린아이까지, 열띤 토론이 벌어져요. 이순신·장화홍련 같은 전래 동화를 모은 ‘코리안 코너’는 꼭 만듭니다.”

이 대목에서 그는 기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돈이 많지 않은,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기라성 같은 MDG 협력그룹 위원들 속에 끼게 된 줄 아세요?”

“각종 국제기구, 주요 선진국, 큰 재단들이 이미 가난한 나라를 돕고 있어요. 그런데 이런 원조는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생활하는 바텀 빌리언(Bottom Billion), 10억 인구에게 가려면 시간이 걸려요. 그 사이 이 사람들은 죽어가요. 톱 다운(top-down), 위에서 아래로의 원조도 필요하지만, 저 같은 사람이 하는 바텀 업(bottom- up) 방식도 중요하지요.”

그의 마음은 온통 아프리카에 가 있다. 몸은 1년에 10번쯤 간다. ‘작은 도서관’ 개막식을 할 때 손님들에게 간식을 먹이고 싶어서 재래식 뻥튀기 기계까지 사들고 갔다고 한다.

#그녀의 인생

● 유학까지 다녀왔으니, 가난은 몰랐을 것 같은데요.

“아주 부잣집에서 태어나 자랐어요. 아버지께서 비즈니스를 하셨어요. 1966년 미국 유학을 갔지요. 주말이 되면 예쁜 아이들은 데이트를 나가고, 기숙사에 남는 건 뚱뚱해서 데이트 신청 못 받는 애들과 영어 못하는 나 정도예요. 주말엔 기숙사에서 밥을 안 주니까 피자를 시켜먹으면서 같이 TV를 보는 거죠. 그때 충격적인 광고가 나왔어요. 광화문 우체국 앞에서 젖을 다 내놓은 아기 엄마가 행인에게 구걸하는 장면, 그리고 이런 문구가 나와요. ‘1달러를 기부하면, 이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

● 50년이 지나서 이젠 도움을 주는 입장이네요.

“일종의 운명이랄까…. 2년 전 가정적으로 어려웠을 때도 아프리카에 가서 위안을 얻었어요. 거기 가면 내 처지를 컴플레인(불평) 할 수가 없어요.”

● 왜 유학을 갔나요.

“신문학을 공부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한국 대학에서 ‘스쿨 오브 저널리즘’은 당시엔 큰 인기가 없었어요. 부모님은 공부도 잘하는데 하필이면 그런 학과를 가느냐고 못마땅해 했죠. 그래서 협상을 해서 미국에서 저널리즘(위스콘신대)을 공부하기로 했어요.”

● 기자를 꿈꿨나요.

“재클린 케네디가 기자였잖아요. 카메라 메고, 마이크에 대고 질문하는 모습이 너무 너무 환상적이었죠. 나도 한번 저렇게 해봐야지…. 그런데 영어가 안 돼서 결국 저널리즘을 그만뒀어요. 이화여고 다닐 때 영어는 항상 A를 받았는데, 미국에 가니까 알아들을 수가 없는 거예요. 기사를 써서 내라는데, 오금이 저리고 도무지 쓸 수가 없어요. 열심히 써서 내면 선생님은 ‘이게 뭐에 관한 기사를 쓴 거냐’ 묻는 거예요. 결국 ‘네 영어 갖고는 안 되겠다. 다른 길을 찾아라’는 얘기를 듣고 기가 막혔죠.”

● 희망을 주는 얘기네요. 이사장님께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건.

“그럼요. 내가 불어를 잘해요. 왜 했느냐. 학점을 평균 B는 받아야 하잖아요. 그런데 다른 과목에선 미국 아이들을 누를 수가 없어. 내가 경쟁력이 없는 거지. 그런데 불어는 저나 나나 다 외국어 아닙니까. 어학실습실 가서 듣고, 열심히 공부하면 되는 거예요. 불어에서 A+를 받으면 다른 과목 C 하고 ‘똔똔’ 하면 B가 나온단 말이에요. 살아남는 전략이었지. 대한민국에서 영어 하면 도영심이 둘째 가라면 서럽다는 거 다 알잖아. 어떻게 영어를 그렇게 잘하느냐 묻는데, 뭔 놈의 비결은.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어. 거북이처럼 하면 돼요.”

● 귀국해 국회 사무처에 들어갔는데, 공직에 관심이 있었나요.

“아니오. 그때 국회에 백두진 의장님이 계셨어요. 박정희 대통령 말기였는데, 인권 문제로 인해 상당히 코너에 몰렸어요. 미국 의회에서 박 대통령에게 인권 문제를 엄청나게 많이 (압박)했어요. 백 의장님께서 우리나라의 특별한 상황, 왜 소위 정치적인 독재를 해야 하는지, 경제 발전을 위해 필수적인 것이라고 설명하는 편지를 쓰셨어요. 영어 잘하는 사람을 찾는데, 내가 촉탁사원으로 들어가게 됐죠. 이후 딱 10년 만에 국회의원이 된 거죠.”

● 비결이 뭡니까.

“노력이에요. 대한민국이라는 곳이 얼마나 지역색이 강하고, 성씨도 따집니까. 나는 지연·혈연·학연 모두 기댈 데가 없어요. 고향이 서울이에요. 호남에서 태어났으면 누구 쪽, 경상북도면 어느 쪽, 이랬겠죠. 성씨는 ‘도’가인데, ‘도’가가 몇 명 됩니까. 그리고 여자죠. 여기서 대학을 나온 것도 아니고. 마이너리티 중에 마이너리티예요. 내가 경상북도 구미 같은 데서 태어났으면 또 달랐겠지.”

● 결국 30여 년간 공백 없이 일을 하셨네요.

“필요에 의해서 한 거예요. 시집 잘 가서 편안하게 살았으면 안 그랬을 수 있어요. 결혼 생활에 도전이 왔고, 아이들 교육을 내가 맡아야 했고, 내겐 일이 필요했어요. 정신 세계를 위해서도 그랬지만, 경제적인 이유에서도 꼭 필요했습니다.”

● 정권을 두루 거치면서 고위 공직에 계셨는데요. (※전두환 정권 때 국회 외무위원회 전문위원, 노태우 정권 때 13대 국회의원, 김대중 정권에서 한국 방문의 해 추진위원장, 노무현 대통령 때 외교통상부 문화협력대사와 관광·스포츠 대사를 맡았다.)

“내 나이가 예순셋이에요. 대한민국에서 이 나이에, 이 정도 국제적인 백그라운드와 네트워크가 있는 사람이 흔치는 않잖아요. 어느 나라에서 뭘 해야 되겠다 하면 내가 전화 걸어 부탁할 수 있는 사람이 한 나라에 적어도 한 명씩은 있어요. 르완다, 케냐, 가나, 미국, 프랑스, 세계 어느 나라이든요. 외국 친구들이 그래요. 너희 나라는 장관 알기도 어렵지만, 알아도 큰 필요가 없대. 왜, 자주 바뀌니까. 그런데 ‘마담 도’는 십몇 년째 휴대전화 번호 그대로, e-메일도 같으니까, 뭐가 필요하면 나에게 전화합니다. 그걸 내가 돈으로 환산했으면 엄청 돈을 벌었겠지.”

● 인맥이 풍부한 비결이 뭔가요.

“그건 자연적으로 온 거예요. 나는 ‘내가 밥 살게요’ 그런 건 안 해요. 하지만 누가 진지하게 어려움을 호소하고 도와 달라 하면 흔쾌히, 최선을 다해서 도와줘요. 기자 분도 ‘알았다’고 하지 말고, ‘알아보겠다’ 하고 그 결과를 꼭 알려주세요. 그 사람은 절실한 일이니까.”



도영심 이사장 약력

1947년 서울 출생
66년 이화여중·고 졸업
71년 미국 위스콘신대 졸업
81~85년 국회의장실 의전비서관
85~88년 12대 국회 외무위원회 전문위원
88~92년 13대 국회의원
2000~03년 한국 방문의 해 추진위원장
2005~07년 외교통상부 관광·스포츠 대사



j칵테일 >> 유누스, 테드 터너와 함께

‘빈곤을 퇴치하기 위해 세계적인 사상가와 행동가들이 모였다’. 밀레니엄 개발 목표(MDG) 협력그룹(Advocacy Group)의 출범을 발표하면서 유엔이 내놓은 설명이다. 세계 빈곤을 줄이고, 질병을 퇴치하고, 교육 기회를 확대하는 활동을 활발하게 펼쳐 온 전문가, 기부자, 정치가 등 16명을 한데 모았다. 따로따로 해 온 활동을 결합시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만들고 시너지를 내자는 취지다. 거액의 재산을 기부해 기아와 질병 퇴치에 앞장서 온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은 MDG 8개 항목 중 유아 사망률 감소, 임산부의 건강 개선, 에이즈와 말라리아 퇴치 분야를 맡는다. 미첼 바첼레트 전 칠레 대통령과 그라사 마셸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 부인은 성 평등 촉진과 여권 신장 분야를 담당한다. 2004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완가리 마타이는 지속가능한 환경을 주제로, 빈민층을 위한 소액 대출(마이크로 크레디트) 사업으로 2006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무함마드 유누스는 세계적인 동반자 관계 구축을 연구한다.



j칵테일 >> 가족 모임은 ‘미니 국제회의’

지난 5월 탄자니아 옛 수도 다르살렘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아프리카 서밋. 도영심 이사장은 ‘가족 상봉’을 했다. 홍콩에 거주하는 딸 일레이나 리(40·왼쪽 사진) CNN 아시아·태평양지역 본부장은 아프리카 기업의 도약 가능성에 관한 세션의 사회를 맡았다. WEF 아시아·태평양 부장인 아들 재영(35·오른쪽 사진)씨는 주최 측으로 참석했다. 남매가 가끔 서울에도 오지만, 세 모자는 다르살렘·파리 같은 곳에서 열리는 국제회의에서 자주 만난다. 관심사가 비슷하니 모이면 할 얘기도 많다. 업무에 관한 조언도 오가고 토론이 붙을 때도 있어 ‘미니 국제회의’를 방불케 한다. “총재님(※남편인 권정달 전 한국자유총연맹 총재)까지 넷이 얘기하면 주제가 더 다양해지죠. 우리 애들은 자기들이 잘 모르는 한국의 역사, 전통, 가문, 정치 얘기를 총재님이 해 주면 좋아해요. 총재님이 한때 정치의 핵심에 있었기 때문에 국가의 거버넌스(통치) 문제도 주제가 되죠. 가족이 모이면 아주 재미있어요.” 안동 권씨 종친회장인 권 총재는 조만간 책을 쓸 계획도 있다고 도 이사장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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