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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낡은 방송규제 틀 벗어나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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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지금 우리 방송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는 디지털기술, 예측 불가능하게 진화하고 있는 방송산업 등은 이제 더 이상 낡은 정치논리나 규제 틀로 규율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른 느낌이다. 재허가 과정에서 불거진 혼란, 무질서한 방송질서, 신규 매체 도입을 둘러싼 갈등 등은 현재 규제체계의 한계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마치 IT라는 우주공간은 급속히 팽창하고 있는데, 방송만은 '우리 식으로 살자'를 다짐하는 블랙홀 같다. 이렇게 과거에 매몰된 낡은 인식은 새로운 방송환경과 마찰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이렇게 우리 방송의 미래지향성을 옭아매는 낡은 인식들을 몇 가지 살펴볼 필요성이 있다.

우선 개별 방송사업자를 직접 규제하는 아날로그식 규제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소수 독점사업자만 존재했던 시대엔 이런 규제방식이 효율적일 수 있었지만, 무수히 늘어난 사업자들에 대해 각각 잘잘못을 가리는 규제방법은 이제 바람직하지 않다.

어떤 사업자는 너무 이익을 남겨서 문제고 어떤 사업자는 경영난에 봉착해서 문제라는 이율배반적인 잣대가 나올 수도 있다. 또 어떤 방송사는 문제는 있으나 파장이 우려돼 넘어가고, 다른 방송사는 허가 취소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이는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다른 이유 때문에 탄압받는다는 인식을 만연시킬 수 있다.

둘째, 정치적 논리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1990년대까지 우리 방송의 최대 목표는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탄생한 방송위원회는 정파적 균형성을 강조했다. 물론 사업자들에게 휘둘려 제 역할은 못했지만 제1기 방송위원들은 탈정치화하려고 노력한 듯하다. 그렇지만 이념적 갈등과 정쟁이 극심해진 참여정부의 제2기 방송위원회는 정치판과 같은 정쟁의 장으로 변질된 느낌이다. 때문에 사실은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재허가 같은 중요한 결정들마다 정치적으로 고려됐다고 오해받을 소지를 안고 있다. 정치논리와 정파적 이익이 뒤범벅된 형식적 대표성을 벗어나 전문성과 책임성이 강화된 규제체계로 전환돼야 할 것이다.

셋째,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구분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 방송은 공영방송과 민영방송이 혼재된 특수한 형태를 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공영방송이 상업적 영역에 걸쳐 있다 보니 케이블TV 같은 뉴미디어들까지 모두 지상파방송에 의존해 먹고사는 형태다.

때문에 종속적 구조에 편승한 매체들은 배부르고, 여기에서 벗어난 매체들은 골병이 드는 양상이다. 이번 재허가과정에서 문제가 된 경인방송이나 스카이라이프가 모두 편승체제에서 비켜난 매체들이라는 점은 이러한 왜곡된 방송구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진정한 공.민영 이원체제를 재정립해 정상화하는 정책적 단안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낡은 공익논리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지금 우리 방송의 공익논리는 공익적 사업자 혹은 자본이 공익적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현행 사업자가 아닌 대기업, 신문사, 통신사업자는 모두 비공익적이라고 주장한다. 재허가과정에서 민영방송들만 문제가 되고, 느닷없는 '공익적 민영방송'이 등장한 것도 이 때문이다. 디지털시대의 공익성은 시청자들이 얼마나 많은 선택의 기회를 갖고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가로 변화되고 있다. 그러므로 제공자 혹은 규제자 중심의 공익논리는 폐기돼야 할 주장이다.

지금 우리 방송은 더욱 폐쇄적으로 되는 듯한 느낌이다. 말로만 무성하지 방송.통신 융합이 한 발자국도 못 나가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미래를 바라보는 방송정책을 위해선 낡은 인식에서 벗어나는 대승적인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황근 선문대 교수.신문방송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