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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누구에게 돌 던지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전쟁이 난 그해 여름은 유난히도 더웠다. 동네 아이들은 여느 때처럼 읍내 앞 강변으로 몰려갔다. 때로는 산속 노루가 내려와 어슬렁거리는 강변 모래톱은 길고도 넓게 퍼져 있었고 강물은 맑고 깊었다. 아이들이 강변에 이르렀을 때 한발의 총성이 울렸다. 모래톱엔 10여명의 민간인들이 눈을 가리고 기둥에 묶인 채 너부러져 있었고 그들을 향해 군인들이 엎드려 쏴 자세로 총을 겨누고 있었다. 책임자로 보이는 군인이 근접 확인사살을 하는 권총에서 연이어 총성이 나고 있었다. 전쟁영화의 낡은 필름처럼 남아 있는 소년기의 이 충격적인 기억 속엔 내 막내삼촌이 들어 있다.

전쟁 전 보도연맹이란 게 있었다. 좌익활동자 중 개전의 빛이 있다고 판단되는 좌익들에게 전향서를 쓰게 하고 관할 경찰서가 관리하는 좌익전향자 단체였다. 전쟁이 나자 이들 전향자가 적과 내통할 수 있다는 우려 탓인지 집단처형을 한 게 이른바 보도연맹사건이다. 내 나이의 절반도 살지 못한 채 비명에 간 막내삼촌도 그 중 한사람이었다. 지금도 고향 선산자락엔 비석조차 없는 초라한 무덤이 있다. 흉사한 자식을 선영에 묻을 수 없다는 할아버지의 뜻에 따라 지금껏 그 무덤은 방치돼 있다. 큰 아들은 시골 지주로, 둘째는 군청간부로, 셋째는 월북하고, 막내는 전향자로 일찌감치 생을 마감한 아들들을 둔 할아버지의 흉중(胸中)은 어떠했을까. 이데올로기의 갈등과 전쟁이 낳은 이 슬픈 가족사에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질 것인가.

노무현(武鉉)후보의 '빨갱이 장인'이 경선 중 입길에 오르더니 월간조선 6월호는 아예 특집을 했다. 장인의 '좌익사건 실록', 장인이 학살을 주도했다는 피해자 유족들의 한 서린 증언과 기자 취재기를 27쪽에 걸쳐 싣고 있다. 후보의 장인은 실명을 한 소극적 좌익이 아니라 적극적 빨갱이였고 양민의 생사를 가르는 재판장이었으며 그의 딸인 후보 부인이 몰랐을 리 없다는 증언이 요지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사람이 양민학살 문제를 모른 채 피해 가족들에게 사과 한마디 없이 금의환향해 학살자의 묘소에 참배할 수 있느냐는 분노가 서려 있다.

내가 막내삼촌의 얼굴조차 기억할 수없듯, 후보도 생전에 만난 적조차 없는 장인에 대해 "사랑하는 아내의 아버지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말할 만하다. 그러나 그냥 서민도 아닌 서민을 대변했고 대변하겠다는 대통령 후보로서, 그것도 이미 장인의 전력이 공개된 마당에 대선후보 확정 직후 장인 묘소까지 찾아간 그가 어째서 마을 피해자 유족들에게 위로의 말 한마디 던지지 못했을까. 유족들의 증언이 맞고 틀리고를 떠나 그가 말하는 역사의 희생자라는 점에서도 그들을 위로하고 사과하는 모습을 보였어야 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장인 얼굴도 모른다고 발뺌할 일이 아니다. 보도연맹으로 죽은 사람의 유족이든, 인민재판의 희생자 유족이든 전쟁이 남긴 유족들의 한과 설움의 무게는 크게 다를 바 없다. 용서와 관용으로 서로의 아픔을 감싸고 달랠 줄 아는 사람이라야 이 갈등과 대립의 시대를 이끌고 갈 참된 지도자가 될 수 있다. 후보는 그 점에서 천려일실(千慮一失), 기회를 놓쳤지만 지금이라도 당장 장인의 마을을 찾아가 그들 피해 유족자를 위로해야 할 것이다.

경선과정에 나타난 후보의 발언과 토론을 종합해 볼 때, 특히 경제정책이나 언론관 등에서 보이는 그의 포퓰리즘적 여러 요소들이 매우 불안해 보인다. 나는 그의 정책이 앞으로 잘 다듬어지고 개혁과 보수가 고르게 조화를 이룬 성숙한 정치지도자로 거듭날지를 지켜보는 사람 중 하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정치적 성공 여부가 장인의 빨갱이 경력에 따라 좌우된다거나 그의 정책이나 생각에 장인의 빨갱이 색깔을 덧칠해 그를 추락시키려는 어떤 정략적 시도나 음모가 있다면 이는 단연 배격하고 물리쳐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월간조선처럼 한 후보의 모든 것을 발가벗기려는 검증적 취재는 돋보인다. 그러나 그 검증 자체가 특정 정치인에 색깔을 입히기 위한 목적으로 동원된 것이라면 이런 시도는 처음부터 잘못된 검증이다. 인공 시절 만난 적도 없는 장인의 전력을 문제삼아 그의 정치사상과 활동을 옥죄려는 여러 시도가 앞으로도 나올 수 있다. 이런식 빨갱이 사냥을 멈추지 않는 한 우리는 1950년대의 저 낡은 이데올로기의 족쇄에서 조금도 벗어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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