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확인에 더 철저했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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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세계 저널리즘의 고전인 허친스 보고서는 "언론의 자유에는 실수할 권리도 포함돼 있다"고 하면서도 그 전제엔 진실을 찾기 위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이 때문인지 현재 미국에는 '현실적 악의(actual malice)'없이 진실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나온 오보는 명예훼손의 면책을 받는다.

중앙일보가 5월 1일자 1,3면에 보도한 '김홍걸씨, 최성규 전 총경 LA서 만나 골프쳤다'는 기사는 사실 입증이 어려워 '미확인 오보'로 잠정 결론이 났다. 따라서 이 일을 계기로 우리는 취재보도의 대원칙 중에서 무엇을 소홀히 했으며, 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났는지를 짚어보고 자성의 기회로 삼으려 한다.

중앙일보의 이번 보도는 보통의 경우라면 상당한 확인절차를 거친 것이었다. 그러나 최성규 전 총경이 미국 도피로 언론의 표적이 된 상태에서 홍걸씨를 만나 골프를 쳤다는 것은 지극히 비상식적인 것이었던 만큼 훨씬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 사실 확인을 했어야 했다. 무엇보다 기사화에 앞서 충분한 물증을 확보했어야 했다. 홍걸씨 일행이 골프를 쳤다는 증언은 확보했으나 고객 보호라는 이유로 골프장측이 공개를 거부하는 바람에 신용카드의 전표 추적이나 폐쇄회로 필름 확인을 하지 못했다. 즉, 부인(否認)만으로는 해소되지 않는 확실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채 정황증거와 전문(傳聞)증거에만 의존한 기사를 실음으로써 반론 이후 보도내용의 진위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된 것이다.

보도 과정에서 한국 언론의 고질적 병폐인 '조급증'을 떨쳐버리지 못했음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선진국의 우수 탐사(探査)보도는 보통 수개월·수년의 취재 과정을 거쳐 탄생한다. 이런 전통이 일천하고 속보 경쟁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국내 언론 풍토 때문에 종종 지나치게 앞서가는 기사들이 나오고 있다. 이번에도 사안의 민감성과 폭발력을 감안해 좀 더 시간을 두고 다른 취재원과 물증을 찾아냈어야 했다.

취재 수준에 비춰 보도가 지나치게 단정적이었다는 자성도 하게 된다.

최소한 '골프를 쳤다'가 아니라 '골프를 쳤다는 의혹이 제기됐다'로,'확인됐다''드러났다'가 아니라 '누구는 ~라고 주장했다''가능성이 있다'라고 표현했어야 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이 사건에 대해 명백한 증거를 확보했었는가 자문하며 가책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번 보도는 워싱턴 포스트의 '지미의 세계'나'한국의 백선장 생존'과 같은 유형의 조작보도는 아니다. 범죄 혐의를 받고 있는 인물들을 추적, 탐사보도하는 과정에서 나온 미확인 오보라고 볼 수 있다.

김홍걸씨의 당일 행적을 포함하여 아직 밝혀지지 않은 진실이 많기 때문에 어쩌면 앞으로의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진실을 찾는 작업은 계속돼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을 교훈삼아 기자들은 확인 가능한 사실만을 독자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기본 자세를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한다.

김택환 전문기자·언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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