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티베트서 네팔까지 산악자전거 타고 넘은 '위기의 40代'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50면

자전거 네대가 줄을 지어 서울 광진구 아차산 중턱의 가파른 바위산을 내려온다. 등산을 꽤 즐기는 이라도 이 길을 내려오자면 다리가 후들거리지 않고는 못배겨낼 정도의 지형이다. 등산객들의 아슬아슬한 눈길이 이어진다. 잘 내려오던 자전거 중 맨 뒤 한 대가 기어이 중심을 잃고 '쿵'하며 나동그라진다.

이들은 모두 올해 45세로 서울고 28회(1976년 초 졸업) 동기동창들이다. 티격대는 모습이 빡빡머리 시절로 시간을 되돌린 듯하다. 최형석씨는 "30년 가까이 얘들 만나다 보니 이젠 지겹다"며 인상을 찌푸린다. 그런데 왜 자전거를 같이 타느냐고 물으니 "누가 뭐래도 고등학교 동창들이 제일 편하잖느냐"고 답한다. 그래, 저마다 진지한 표정으로 학연·지연을 파괴하자고 하지만 만나면 맘 편한 이들이 고교 동창임을 누가 부인하랴.

#산악자전거로 다져진 우정

김병화씨는 "고교 시절엔 서로 아는 사이였지만 특별히 친하진 않았다"고 말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간간이 동창모임을 통해 만나는 정도였다. 그런데 고교 시절부터 암벽·빙벽 오르기를 즐겼던 최영규씨가 무리한 산행으로 몸이 고장나자 93년 산악자전거 타기로 종목을 바꾸면서 이들은 급속도로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혼자 타기가 쓸쓸했던 그는 최형석씨를 꼬드기는 데 성공했고 이어 조원장·김병화씨가 자전거 타기에 합류했다. 이들의 주도로 2000년 서울고 28회 동기회엔 'MTB(산악자전거)475(40대를 지칭)'란 산악자전거 타기 모임이 만들어졌고 회원도 15명으로 불어났다.

특히 이들 4인방은 죽음의 랠리라 불리는 '280랠리'에도 두번이나 참가했다. 강원도 함백산 만항재에서 가리왕산·오대산을 넘어 구룡덕봉에 이르는 2백80㎞ 구간을 1박2일 동안 달리는 경기로 산악자전거 매니어들에겐 고통스럽지만 가장 즐겁기도 한 축제다.

그러나 국내 무대는 너무 좁았던 탓일까. 4인방은 지난해 일을 내고야 말았다. 세계 산악자전거 라이더들이 평생에 한번쯤은 가보고 싶어하는 티베트코스에 도전한 것이다.

#티베트로 간 남자들

4인방이 모래바람·바위, 그리고 종교의 땅 티베트로 향한 것은 지난해 10월 2일. 8박9일 일정으로 티베트의 수도 라사에서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까지 1천㎞를 여행하기 위해서였다.

이 코스는 중국이 98년 처음으로 외국인에게 개방한 것으로 모험을 즐기는 이들에겐 트레킹·라이딩 명소로 자리잡았다. 지난 2일 저녁 인천공항을 떠나 중국 청두(成都)를 거쳐 라사에 도착한 이들은 4일부터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했다.

그러나 시작부터 암초에 부딪쳤다. 라사(해발 3천6백m)·캄바라 고개(4천8백m)등 이 모두 고산지대에 위치해 도착과 동시에 온 몸에 전기가 통하는 듯 찌릿찌릿하고 머리가 멍해지는 고소증 증세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 본격 여행 이틀째 기착지인 시가체에서 결국 사고가 났다. 고소증에다 계속되는 설사증세로 고통스러워하던 최형석씨가 탈진하고만 것이다. 응급실을 찾아 헤매다 조그만 시골병원에서 최씨는 코에는 산소공급기를, 팔뚝에는 링거 바늘을 꽂고 하룻밤을 지샜다.

불편한 잠자리·고소증·추위 등 고통스러운 여행길이었지만 즐거움도 많았다.

"티베트에서 5일째되던 날 4천9백90m 라룽라 고개에서 네팔 국경까지의 구간 중 1백㎞의 내리막길을 달려내려 왔습니다. 웅장한 히말라야 산세를 등지고 한대기후가 열대기후로 바뀌어가는 것을 느끼면서 말이죠." 이 모임의 리더 격인 최영규씨는 이 말을 하며 눈을 살포시 감았다. 고행(?)을 끝낸 4인방은 카트만두에서 하루 휴식을 취한 뒤 상하이(上海)를 거쳐 서울로 돌아왔다.

#티베트로 간 까닭은

"요즘 40대 남성의 고민을 그린 TV드라마 '위기의 남자'가 인기라면서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회적으로 일견 성공한 것 같지만 실제론 별로 해 놓은 것도 없는데 어느새 불혹(不惑)을 넘어 지천명(知天命)은 다가오고…. 사춘기 소년같은 말이긴 하지만 나를 확인해보고 싶었다고 할까요."(김병화)

"티베트, 단어만 떠올려도 뭔가 있을 것 같지 않나요. 그렇다고 무언가 특별한 것을 얻어온 것은 아니지만 여행 이후 매사에 자신감이 살아남을 느낍니다. 누구나 40대에 인생의 고비를 맞지만 저는 자전거를 타며,그것도 히말라야를 넘으며 헤쳐나가는 것이죠."(최형석)

"산악자전거 타기는 벤처와 비슷합니다. 산속 헤매기는 모험,급경사 내려오기는 도전,체인도 끊어지고 타이어도 펑크나는 벤처의 위기극복과 흡사하죠. 그러한 즐거움과 고통이 절묘하게 결합된 곳이 바로 티베트라고 생각했습니다."(조원장)

"기찻길에 온 몸이 묶여 있는 사내가 있습니다. 기차가 오면 죽는 것이죠.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는 세대가 20대라면, 30대는 철로를 타고 멀리서 기차의 철커덕거리는 소리를 듣고, 40대는 바로 가까이서 그 소리를 듣는 세대죠. 40대에 접어들면서 엄습해오는 위기감을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는 시도를 했고 그 중 하나가 티베트행이었습니다." 휴식을 끝낸 후 배낭을 둘러메고 안전모를 착용한 4인방은 다시 힘차게 페달을 밟았다.

김준현 기자

졸업한 지 25년 넘은

40대 고교 동기들.

자전거 하나 달랑 메고

티베트로 떠났다.

1천㎞의 대장정.

불편한 잠자리·고소증·

추위…. 고통스런

길이었지만 추억과

자신감은 두배가 됐다.

"누구나 40대에 인생의

고비를 맞죠. 그렇지만

우리들은 함께 자전거를

타고 히말라야를 넘듯

꼭 헤쳐나갈 겁니다."

네 친구들은...

◇최형석

직업:㈜성도 사장

별명:본드

좌우명:007영화의 본드처럼 운동 등 모든 것을 품위있고 폼나게.

고교시절엔:보디빌딩 미스터 서울(고)

◇최영규

직업:㈜오디캠프 사장

별명:록키

좌우명:한번 갔던 길은 다시 가지 않고 길이 없으면 내가 만든다.

고교시절엔:암벽·빙벽 오르기 매니어

◇김병화

직업:브릿지증권 송파지점 부장

별명:골드킴

좌우명:주변의 사람들을 부자로 만들자

고교시절엔:육상선수

◇조원장

직업:다니스코 쿨토 한국지사장

별명:머슴

좌우명:머슴처럼 일해서 부자되자

고교시절엔:수영선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