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화학·현대모비스·삼성전기 눈부시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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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팔아 사라” “세계 최고의 성장주” “놀라움의 연속”….

꿈과 미래를 먹고 사는 속성상 증시는 다소 호들갑스럽다. 하지만 이런 ‘찬사’에 가까운 제목의 기업분석 보고서가 나오는 게 흔치는 않다. 그만큼 애널리스트가 그 기업의 성장성과 안정성에 믿음을 갖고 있다는 의미다.

최근 이런 호평을 받고 있는 주인공은 삼성전기·LG화학·현대모비스다. 한때 완성품을 만드는 화려한 전방산업에 가려 있던 후방산업, 즉 부품·소재를 만드는 기업들이다. 금융위기 이후 ‘몸값’이 드라마틱하게 상승하며 증시 주변에서 중심으로 진입했다는 공통점도 있다.

◆주변에서 중심으로=1717과 1729. 지난 25일 기준으로 2년 전과 현재의 코스피지수다. 금융위기 이전으로 돌아간 것이다. 하지만 속을 살펴보면 기업별로 오르내림의 폭은 상당히 컸다.

시가총액 변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정보기술(IT)·자동차 업종의 약진, 은행·통신·조선 업종의 부진이다. 부품·소재주의 화려한 부상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올 들어 상장한 삼성생명을 제외하면 이 기간에 ‘별 중의 별’인 10위권에 새로 진입한 기업은 LG화학과 현대모비스뿐이다. 20위권으로 범위를 넓혀보면 삼성전기가 눈에 띈다.

LG화학의 경우 2년 전 8조원에 못 미쳤던 시가총액이 현재 20조원을 넘어섰다. 시총 순위도 28위에서 7위로 뛰어오르며 LG그룹의 ‘대표주’로 등극했다. 기존의 석유화학에다 2차전지, 디스플레이 재료 등으로 생산품목을 확대하며 성장성을 확보한 게 주가 상승의 원동력이었다. 여기에 제품이 다양하니 다른 석유화학업체와 달리 주가가 유가의 움직임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안정성까지 갖췄다는 평가다.

같은 기간 현대모비스도 29위에서 8위로 뛰어오르며 KB금융·현대중공업 등을 제쳤다. 한국 차의 선전이 이어지면서 이 업체는 글로벌 ‘톱 10’ 자동차 부품사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다. 발광다이오드(LED)를 앞세운 삼성전기의 부상도 눈부시다. 시가총액이 11조2040억원으로 2년 전의 세 배 이상으로 뛰었고 시총 순위는 무려 45계단 올라섰다. 현재 삼성전자·삼성생명 다음으로 비싼 삼성 계열사다.


◆‘아이폰 현상’=부품·소재 기업은 전방 산업이 활황이면 따라서 잘나가는 특징이 있다. 하지만 이들의 몸값에 담긴 증시의 기대는 단순한 ‘후광 효과’를 넘어섰다는 평가다.

무엇보다 우리 부품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이 크게 높아졌고, ‘그린’과 ‘스마트’라는 위기 이후 트렌드 변화에도 빠르게 대응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이는 수출에서도 뚜렷이 나타난다. 지난해 이후 빠르게 늘어나 올 1분기의 경우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을 넘긴 50.9%였다. 부품·소재 강국인 일본(52.6%)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삼성경제연구소 이태환 수석연구원은 “금융위기 이후 우리 수출이 선전을 거듭한 데는 신흥시장의 성장, 낮은 원화가치와 함께 부품·소재산업의 경쟁력 강화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증권가에서 최근 주목하고 있는 게 이른바 ‘아이폰 현상’이다. 국내 휴대전화 업체들을 곤경에 빠뜨린 미국 애플 아이폰의 핵심 부품은 한국산이 주종이란 게 업계의 관측이다. 그렇다 보니 완성품 업체는 고전해도 부품업체는 여전히 각광받는 일이 생긴다.

HMC투자증권 이종우 리서치센터장은 “예전에는 완성품 업체가 주로 돈을 벌었다면, 지금은 핵심 부품업체가 돈을 버는 시대”라면서 “이런 경향이 지난해부터 증시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래에셋증권의 분석에 따르면 과거 LCD 시장의 성장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했던 곳은 패널생산 업체도, 장비 제조업체도 아닌 재료업체였다. 2000년 이후 10년간 LCD 패널 시장은 3.8배, 장비시장은 2배로 성장하는 데 그쳤지만, LG화학 등이 생산하는 유리기판 시장은 13배로 커졌다.

IT보다는 더디지만 자동차산업에서도 이런 변화가 시작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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