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송호근 칼럼

‘마지막 한 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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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그래서인지, 60주년을 맞는 올해에는 전쟁의 리얼리티를 있는 그대로 보이려는 기획물과 영상물이 쏟아졌다. 기왕에 6·25를 다룬 드라마와 영화가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언론과 방송사들은 마치 낡은 음반의 잊혀진 곡들을 복원해내듯 기억을 재생하는 프로그램을 다투어 내놓았다. 이웃 간 살상, 학살, 폭격, 생이별, 피란 등 빛바랜 사진에 60년 전의 참상들이 겹쳐질 때 전쟁세대는 억눌렀던 설움이 다시금 북받쳐 올랐을 것이지만, 인구의 8할을 점하는 전후세대에게는 이 땅에 있었던 하나의 슬픈 스토리 정도로밖에 여겨지지 않을 것이다. 신체에 각인되지 않은 역사는 일종의 드라마일 뿐이다. 특히 풍요의 시대에 자란 젊은 세대에게 6·25는 가슴을 때리지 못하는 사건, 20세기에 발발한 국지전 중 하나로 인식될 것이다.

“현대 한국인들은 분명 그 전쟁에 관심이 없다”고 지적한 영국 ‘더 타임스’의 서울특파원 앤드루 새먼의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에 필자는 자괴감을 느낀다. 전후세대이자 외국인인 그는 한국인 그 누구보다 ‘잊혀진 전쟁’에 관심을 쏟았고, 자신의 선배들이 이 낯선 땅에서 어떻게 싸웠는지를 정밀하게 복원했다. (『마지막 한 발(To the Last Round)』). 솔직히 고백하건대, 새먼의 이 논픽션적 창작은 필자를 전장으로 데리고 갔고 참호에 나뒹군 영국군 병사의 이름을 하나씩 기억하도록 만들었다.

영국군이 진을 친 곳은 서울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위치한 의정부와 적성계곡이었다. 미군이 극한의 장진호에서 겨우 빠져 나온 뒤였다. 영국군은 벨기에군과 함께 서울 함락을 목표로 밀어닥쳤던 펑더화이의 13만 중공군과 임진강 대접전을 벌였고, 결국 연대 병력의 절반을 잃었다. 새먼의 날카로운 감각으로 복원된 그 스토리, 아마 유엔군 모두에게 해당하는 이 예사롭지 않은 장면들은 전후세대의 뇌리에 6·25 전쟁의 현장감을 각인시키기에 충분하다. 의정부 북쪽 감악산 기슭에 매복했던 글로스터 중대 프랭크 카터는 밤새 브랜기관총을 난사했다. 그는 수류탄 하나로 무장한 중공군이 왜 그렇게 몰려오는지를 의아해했다. 임진강변에 매복했던 퓨질리어스 중대 데릭 키니 하사, 라이플스 중대 존 몰 중위 역시 머리 위로 온갖 쇠붙이가 난무하는 격전의 밤을 지켜내야 했다. 탄환이 떨어진 채 개미처럼 밀려드는 적병과 마주치면 생존만이 문제였다. 전쟁의 의미는 역사학자와 사회과학자들의 몫이었다. 마침내, 영국의 신무기 센추리온 탱크와 전우의 주검을 버려둔 채 퇴각하는 외국인 병사들은 이미 그들의 청춘을, 그들의 전후 삶을 한반도에 저당 잡힌 운명이었던 것이다.

영국군뿐이겠는가? 미국·호주·캐나다·에티오피아·필리핀·터키군도 그랬고, 우리의 학도병·소년병, 그리고 고지에 묻힌 국군 병사들이 그랬을 것이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유족들과 피란민들이 어쨌든 상처를 안고 전후 복구에 힘을 쏟을 동안, 참전 용사들은 전우들의 단말마, 자신들이 죽인 적병의 일그러진 표정, 박격포탄과 네이팜탄의 번쩍이는 섬광과 더불어 살아왔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말한다. ‘한국은 이제 인생의 일부가 되었다’고, ‘자신의 희생이 한국의 눈부신 성장에 밑거름이 되었음을 확인하는 것만큼 보람된 일은 없다’고 말이다.

전쟁세대는 6·25를 몸으로 간직하고, 전후세대는 그들이 재생한 기억을 물려받을 따름이다. 전쟁세대에게 전쟁은 격분·공포·설움이고, 전후세대에겐 한 차례 지나간 역사의 천둥소리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제 곧 세상과 작별할 참전 용사들이 그들 생명의 ‘마지막 한 발’을 다 써버리기 전에, 세계에 우리가 갚아야 할 일을 시작하는 일이다. 그런 전쟁이 한반도와 다른 지역에서 재발하지 않게 하는 것, 그것이 무엇일까.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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