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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효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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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사소한 사건이나 만남이 나중에 자신의 인생에 큰 변화를 일으킨 계기가 됐음을 알고 놀란 적이 있을 것이다. 이런 현상을 미국의 기상학자인 에드워드 로렌츠는 '나비효과(Butterfly Effect)'라 했다. 중국 베이징(北京)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미국 뉴욕에서 폭풍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나비효과를 지방자치에 적용해 보자. 선거 때 유권자가 던진 한 표가 나중에 그 지역에 어떤 효과로 되돌아 올까.

이석형(46) 전남 함평군수. 재선(再選)인 그의 행정철학은 좀 유별나다. 그는 이렇게 정의한다. "행정은 봉사가 아니라 파는 것이다."

그는 '진짜 나비'를 팔아 함평을 살려냈다. 지방 방송국 PD이던 그가 1998년 6월 40세의 나이로 군수에 당선됐을 때 주위에선 우려의 시선으로 그를 봤다. 나이가 어린 데다 행정경험도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이듬해 5월 함평천 주변 1000만평의 들판에 심어 놓은 보랏빛 자운영과 노란 유채밭에 나비축제를 벌이면서 그는 이 고장의 운명을 바꿔 놓았다. 평범한 시골마을에 불과했던 함평에 지금 나비를 보러 연간 300만명의 관광객이 몰려든다. 관광객이 떨어뜨리고 가는 돈만 200억원에 이른다. 목포대는 나비의 경제적 파급 효과를 1600억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나비축제 대박 뒤엔 이 군수와 공무원들의 눈물겨운 노력이 있었다. 축제 홍보를 위해 군수와 직원들은 전국의 백화점을 돌아다녔고, 전국의 초.중.고교에 안내 팸플릿을 보냈다. 아침 등교시간에 맞춰 전 직원이 광주에 있는 학교로 뛰어갔고 아파트 단지를 찾아다니며 나비축제를 알렸다.

반면 같은 도(道) 해남군의 경우를 보자.

공무원 출신으로 98년 해남군수에 당선돼 2002년 재선에 성공한 민화식(65)씨. 그는 지난 5월 임기 2년여를 남겨놓고 군수직을 버렸다. 한달 뒤 치러진 전남도지사 보궐선거에 출마하기 위해서였다. 여기서 낙선한 민씨는 지난 10월 30일 자신의 사퇴로 공석이 된 해남군수 보궐선거에 다시 출마했다. 무소속→민주당→열린우리당→무소속으로 옮겨다닌 그의 당적도 숨가쁘다. 그를 믿고 재선까지 시켜준 지역주민들은 안중에도 없는 행동이다. 유권자들은 그를 낙선시켰다. 재선은 시켰지만 세번째는 속지 않은 셈이다.

민씨가 사퇴한 5월부터 10월 30일까지 군정은 업무공백으로 파행을 겪어야 했다. 공무원들이 도지사 보궐선거에 직.간접으로 개입하면서 내부분열이 일어났다. 공직사회가 풍비박산이 나고 지역사회도 분열되는 등 소용돌이가 몰아쳤다. 당시 부군수를 포함해 실.과장, 읍.면장에 일용직까지 80여명의 공무원들이 선거법 위반 혐의로 경찰의 조사를 받았다. 전공노는 지난달 민씨를 상대로 법원에 7억원의 구상권을 신청했다. 개인 욕심 때문에 군민들의 세금으로 치른 선거비용을 물어내라는 것이다. 주민들도 "해남군의 명예가 땅에 떨어졌다"며 허탈해 했다. 새 군수가 들어섰지만 아직도 해남군은 후유증을 앓고 있다고 한다.

함평군과 해남군의 주민들 모두 나비효과를 실감하고 있다. 잘 뽑은 리더는 부를 만들고 희망을 주지만, 잘못 뽑은 리더는 주민들에게 고통을 준다.

시장.군수는 주민의 숨소리를 선명하게 느낄 수 있는 행정을 펴야 한다. 지역의 삶의 숨결을 제대로 파악하고 피돌기를 원활히 하는 일, 그것이 시장.군수의 몫이다. 그런 자질과 능력을 갖춘 사람을 뽑는 것은 주민들이 할 일이다. 지금 미세한 나비의 날갯짓이 5년, 10년 후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생각해야 한다.

지방이 더 이상 국부(國富)의 언저리가 아니라 향부(鄕富)의 중심에 서야 할 때다. 희망은 지방에 있기 때문이다.

정재헌 사회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