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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함 숫자 절반 줄인 미국, 빈자리 파고드는 중국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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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호 20면

2009년 4월 남중국해에서 전속 항진 중인 중국 상급 핵잠수함. 미 해군정보국은 상급의 규모를 7000t으로 추정하지만 중국 측 자료는 1만t급이라고 한다. [차이나디펜스 닷컴]

천안함 사태는 깊은 해저의 공포를 백일하에 드러냈다. 어둡고 깊은 바다에 숨어 있는 잠수함은 아무리 작아도 ‘막을 수도 탐지해 낼 수도 없는 괴수’임을 보여줬다. 하지만 안보 담당자는 잠수함의 무서움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1962년 5월 1일 작성된 미 해군 비밀 문서는 이렇게 썼다.

아시아 바다 밑 잠수함 열국지

“잠수함은 치명적인 긴장을 준다…배가 기지를 떠나 목표를 거쳐 복귀할 때까지 끊임없이 그렇다…탐지도 안 되고 보이지도 않는 적 잠수함은 끊임없는 지속적 위협이다.”

공포는 37년 뒤 1999년 5월 17일 문서에도 여전히 반영돼 있다. ‘디젤 잠수함의 위협-무시·교전·회피’라는 제목으로 미 해군대학이 만든 문서다.

“잠수함 확산은 끊임없는 위협이다…적 잠수함은 작전적 및 전략적 충격을 줄 수 있다…대응 방법으로 ▶위협을 수용하거나 무시하기 ▶개입 전략으로 위협 리스크 줄이기 ▶잠수함을 회피하기 등이 있다…합동·연합 군사력을 사용한 개입·억제 전략을 추천한다.”

1982년 포클랜드 전투가 2차대전 뒤 잊혀져 가던 잠수함의 무서움을 실감시켰다. 당시 영국군은 아르헨티나의 디젤 잠수함 샌 루이스(독일제 209 타입, 한국의 장보고급과 같다) 때문에 골치를 썩였다. 대잠 항공모함 2척, 핵 잠수함 4척과 십여 척 대잠함이 동원됐고 200발 이상의 어뢰를 발사했지만 샌 루이스 탐지를 못했다. 잠수함을 피해 항공으로 군수 지원을 하느라 비용과 시간이 더 들었다. 아르헨티나 군참모대학의 후안 카를로스 마르구이주르 박사는 “제3세계나 다른 나라들이 왜 작고 느린 전함을 주문하거나 건조하는가. 독자 해군력을 건설하려면 잠수함을 구입하는 게 더 논리적”이라고 했다.

그런 논리가 아시아의 잠수함 경쟁의 배경이다. ‘강력한 무장과 은밀성’은 잠수함의 힘이다. 못하는 게 없다. 전략적 저지, 해상 장악, 침투, 억제, 정찰·정보수집, 특수작전, 지상 공격을 위한 사전 지원 등 모두 은밀하게 한다. 이런 힘을 국가 전략에 이용하는 경쟁의 선두를 중국이 치고 나왔고 아시아 국가들이 잇고 있다.

중국은 1995년 이후 미국 잠수함이 줄어드는 틈을 타고 대대적인 잠수함 증강을 했다. 그사이 미국 잠수함은 102척에서 53척으로 줄었고 2028년엔 41척으로 준다. 미 해군 정보국(ONI) 자료에 따르면 중국 해군력은 아시아 최대다. 현재 공격형 잠수함은 62척. 7대가 핵 잠수함, 55대가 디젤 추진이다. 러시아보다 잠수함 보유대수가 더 많다는 평가도 있다. 이미 4개 타입의 독자 모델도 선보였다. 전술 핵미사일 발사가 가능한 진급(094타입·SSBN)과 핵 잠수함 상(商)급(093타입·SSN), 초계용 위안(元)급(039타입·SSP), 공격용 쑹(宋)급(039G-SSK)이다. 중국은 강화된 잠수함 전력으로 초계를 늘렸다.

중국이 늘려가는 사이 미국은 1987년 102척에서 2009년 53척으로 잠수함 수를 줄였다. 1999년 미 합참의 연구는 모든 수요를 감당할 수 있는 잠수함은 2015년 68척, 25년 76척이지만 실제로는 2022~2023년 48척으로, 2028~2029년 바닥인 41척으로 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미국은 잠수함 성능이 중국보다 뛰어나 보유대수의 갭을 극복할 수 있다고 하지만 늘어난 중국 잠수함의 수를 줄어든 미국 잠수함으로 대응하다 보면 엷어지고 효율성이 떨어질 것이란 걱정을 한다. 그래서 미 의회가 버지니아급 잠수함의 수를 해마다 2척, 최대 60대까지 늘려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이렇게 돼서는 예정된 로스앤젤레스(LA)급 잠수함의 대체계획이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또 잠수함을 괌, 하와이, 일본 같이 중국에 가까운 태평양 기지에 전진 배치시켜 이동 시간을 줄임으로써 전력 갭을 줄일 필요성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요컨대 이런 저런 고민을 많이 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퇴조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 있다. 2006년 10월 26일 중국의 쑹급 잠수함이 오키나와 해상에서 작전 중인 미국 항공모함 키티호크에 5마일(9㎞)까지 접근해 떠올랐다. 10여 척의 호위함에 둘러싸였지만 대잠 경계망에 탐지되지 않았던 것이다.

‘미국 퇴조-중국 부상’의 구도가 아시아 국가들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공백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힘으로 메워나가기 시작했다. 중국의 부상을 좌시했다가는 목에 칼이 들어올 것이란 위기감이 반영돼 있다. 호주·일본이 강력히 나오고 인도·말레이시아·파키스탄·인도네시아·싱가포르도 뒤를 잇는다.

호주는 2009년 4월 1일 ‘2차대전 이후 최대의 군사력 증강’을 선언했다. 현재 6척의 잠수함 외에 크루즈 미사일 발사가 가능한 6척 현대식 잠수함 획득을 공언했다. 인도도 움직인다. 17척 잠수함을 보유하고 있는데 최근엔 핵 잠수함도 진수시켰다. 일본은 18척 최신 잠수함 함대를 유지하고 있다. 대만은 4척을 보유하고 있는데 추가 확보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2척을 가동 중이며 2024년까지 12척을 건조할 계획이다. 베트남도 러시아제 킬로급 잠수함 6대 구입 주문을 내놨다. 싱가포르는 현재 4척에서 2대 추가 구입을 추진 중이다. 말레이시아도 2007년 8월 첫 잠수함 스콜피온급을 주문했다. 태국도 수척의 잠수함 구입 희망을 내놓은 상태다.

남중국해 바다 속 힘의 공백에 손을 뻗치는 중국. 중동-인도양-믈라카해협-동남아시아-태평양을 잇는 수송로와 바다에 전략적 이해 관계를 걸고 있는 나라들에 중국 잠수함은 엄청난 위협일 수밖에 없다. 특히 석유·화물 수송선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믈라카해협 인근 해역은 세력을 뻗치려는 중국과 방어하려는 나머지 국가들의 잠수함이 힘겨루기를 하는 뜨거운 바다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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