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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경의 책 vs 책] 사주는 첨단과학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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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백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
조용헌 지음, 푸른 역사, 390쪽, 1만5000원

사주 명리학 이야기
조용헌 지음, 생각의 나무, 358쪽, 1만5000원

토정비결의 계절이 돌아왔다. 을유년 새해 책력이 서점 진열대 앞쪽으로 나오고 거리 노점들도 계절 상품으로 책력을 팔고 있다. 서점에 서서 책력을 집어드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새해의 길흉화복을 궁금해하는 긴장감이 엿보인다. 토정비결처럼 명리학·풍수학 등은 그 원리나 내용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채 거대한 비의적 영역으로 뭉뚱그려져 있고, 그것도 비과학적 술사의 영역쯤으로 치부된다.

『5백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와 『사주 명리학 이야기』를 쓴 저자는 동일인인데, 그는 바로 그 점을 가장 가슴 아프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가 두 권의 책을 쓴 이유도 5000년 동양 학문의 뼈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천문·지리·인사에 관한 학문을 제도권으로 옮겨 학문적 시민권을 얻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명문가 이야기』는 천·지·인의 학문 중 지리에 해당되는 풍수학을, 『사주 명리학 이야기』는 천문에 해당하는 명리학을 다루고 있다. 인에 해당하는 학문은 의학이라고 하는데 위 세 영역은 조선시대까지 학자들의 교양 학문이었다고 한다.

우선 『…명문가 이야기』는 표면적으로 우리나라 명문 종가들의 집안 내력과 배출된 인물들을 소개하는 형태를 띤다. 경주 최 부잣집, 해남 윤선도 고택, 강릉 선교장 등 열 다섯 종가의 흥망성쇠를 그리고 있다. 그런데 그 모든 사실을 해석하고 설명해내는 기준은 일관되게 동양학문을 포함한 풍수학의 원리에 의해서다. 문필봉을 ‘안대’로 삼은 집안에서는 문사가 많이 배출되었고, 마당 앞의 연못을 메운 집은 물길이 차단당해 복이 마르기 시작했다는 식의 이야기다.

“전남에는 유배지로 유명한 섬이 두 군데 있는데 하나는 진도이고 다른 하나는 완도이다. 진도는 주로 붓을 다루는 문인들의 유배지였고 완도는 칼을 다루는 무인들의 유배지였다.”

진도는 농토가 많아 백면서생도 살 수 있고 완도는 척박한 지형이어서 힘센 무인들을 보내어 개척하게 했다. 유배지를 선정하는 데도 그토록 세밀한 풍수적 배려가 있었다고 한다. 이 책은 명문가들의 삶의 가치와 도덕성에 대한 타산지석의 교훈서로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얻었다. 그런데 나는 오히려 이 책을 통해 풍수의 기본 원리와 개념을 명료하게 이해하게 된 점이 더 좋았다.

『사주 명리학 이야기』는 『…명문가 이야기』가 크게 반향을 얻은 다음에 나온 책이다. 서문에서 저자는 “사주명리학의 함량 미달, 덤핑, 싸구려를 개선하고자 한다”고 말한다. 그는 명리학이 우주의 운행에서 읽어낸 오행의 법칙을 땅 위에 조응시켜 개인의 삶 속에서 해석해내는 학문임을 힘주어 주장한다. 실제로 명리학을 공부해 보면 그것이 얼마나 치밀한 과학적 원리 위에 서 있는 학문인지 알게 된다. 사주를 푼다는 것은 명리학의 과학성 위에 해석자의 직관과 통찰력을 동원하여 하나의 세계를 해석해내는 일이다. 그만큼 깊고 오묘한 작업이다. 이 책에는 명리학의 원리뿐 아니라 동양 학문의 맥을 이어오는 거장들의 삶의 자취, 주역이나 점이라고 하는 것의 본질, 접신 현상에 대한 이해 등이 다양하게 소개되어 있다.

두 권의 책에서 저자는 전통 학문의 현대화, 음지 학문의 양지화를 꿈꾸는 사람답게 문체에도 세밀하게 신경을 썼다. 언어는 외래어까지 섞인 현대어이고, 말투는 의도적으로 웃음을 끼워 팔기라도 하려는 듯 경쾌하고, 비유하기 위해 동원하는 원리들은 어김없이 최첨단 현대 문명이다. 지리산을 ‘국내 최대의 도인 클럽’이라 말하고, 증권가의 애널리스트를 5000년 역사의 점쟁이들의 전통을 잇는 직업이라 한다. 낡고 비과학적인 것으로 치부되는 우리의 전통 학문이 어떻게 과학적이고, 명쾌하고, 심지어 포스트모던한가를 보여주기 위해 무던히도 애쓰는 게 느껴진다.

소설가로서 내가 어떤 책을 읽는 것은 세상과 인간을 조금 더 보고 싶다는 일관된 욕망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두 권의 책으로 대표되는 전통 학문에 대한 공부는 세상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눈을 갖게 했다. 인간의 내밀한 내면을 이해하는 데, 생의 불가사의한 측면을 받아들이는 데, 두 가지 학문은 내게 아주 유용했다. 유·불·선을 통합한 우리의 전통 학문에 대한 지식도 많이 얻었다. 그리하여 이제는 나도 안타깝다. “별을 보면서 길을 잡을 수 있는 시대는 행복하였다”는 루카치의 말에는 열광하는 이들이 왜 우리 별을 보면서 우리 길을 찾는 명리학은 멀뚱한 눈으로 바라보는지.

김형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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