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할수록 부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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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김영삼과 김대중, 이 두 대통령은 '개혁'을 청와대의 돌격 깃발로 죽 내걸었다는 점에서 서로 공통한다. 개혁의 목적은 무엇보다 부패를 척결하는 데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도 최악 최대의 '부패'가 그들의 임기를 가득 채우고 말았다는 점도 서로 통한다. 개혁할수록 부패하는 정치, 거기에는 필시 까닭이 있다.

金 '아들 스캔들' 닮은꼴

우리말의 부패는 사체(死體)의 유기물을 박테리아가 분해(分解·decompose)하는 것과 사람이 도덕적·법률적으로 타락(corrupt)하는 것, 양쪽을 다 의미한다. 견제와 균형의 꽉 죄는 틀을 벗어난 권력은 반드시 부패한다. 일상성을 벗어난 특별사업(프로젝트) 수행을 빙자한 탈(脫)법치적 권력과 책임없는 음지(陰地)의 권력(?자금처럼 ?권력이라고나 부를까)이 이런 권력이다.

양김(金)의 경우 다 아들(들)이 부패 스캔들의 한복판에 빠졌다. 아들(들)이 관련됐다고 해서 무턱대고 그것에 대통령을 연좌(坐)시키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오히려 억울한 것은 아들들이다. 부패하고 있는 유기체는 대통령인 아버지들의 권력이기 때문이다.

김영삼과 김대중 두 사람은 '개혁' 프로젝트를 빙자해 권력을 강화한 대통령들이다. 그들은 권위주의 시절 박정희나 전두환이 반공(反共)과 개발 프로젝트로 권력을 탈법치적으로 확대하고, 패거리(crony)성 정치가와 관료를 통해 이런 권력을 행사하던 것을 몹시 부러워했음이 틀림없어 보인다.

그들의 민주화 투쟁은 민주주의의 성취를 위하기보다 권력을 잡고 확대하기 위한 방편이었을 뿐이라는 미래 역사가의 평가를 예견하는 사람들도 많다. 양김의 '개혁' 프로젝트에는 가신(家臣)그룹이나 지연·학연 패거리 출신의 파렴치한 인격들과 비도덕적 재능들이 모여들었다. 권력이, 특히 확대되고 있는 권력이 부패의 필요조건이라면 패거리는 그 충분조건이다. 이들은 투명성이 없는 비(?)권력을 향락하였다. 패거리는 탈법치적 권력이 운명적으로 불러들여 공생하는 부패 박테리아다.

김대중 대통령은 김영삼 전 대통령보다 개혁의 대상·내용·추진방법을 훨씬 더 확대·심화·교묘화했다. 전쟁을 일으키면 대통령의 권력은 엄청 커진다. 아이디어가 많은 사람으로 명성이 있는 김대중 대통령은 전쟁의 개념을 뒤집은 '햇볕정책' 프로젝트를 창안하였다. 그뿐 아니다. 그에게는 1997년 경제위기 극복이라는 또 다른 거대 프로젝트가 임기가 시작되기 직전에 따끈따끈하게 마련돼 있었다.

이 프로젝트에 관련된 권력의 상당부분은 국제통화기금(IMF)의 것이었으나, 그는 이를 기화로 '4대 개혁'을 설계, 실행에 착수했다. IMF 개혁의 본질은 자유시장경제를 향한 것이었다. 그 내용은 금융기관을 포함한 기업의 투명성 확보, 글로벌한 회계·경영 기준 실시, 기왕의 부실자산 처리, 민영화, 노동시장의 유연화, 관료적 규제의 완화 등이었다. 이와 범주가 다른 것으로 외환과 외국인 투자의 자유화가 있었다.

이 가운데 외국인 채권자들의 맹주(盟主)인 IMF의 등쌀 때문에 외환과 외국인 투자의 자유화가 이루어진 것과 대규모 기업퇴출을 제외하면 '4대 개혁'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개혁을 추진하면서 김대중은 김영삼보다 몇 배나 큰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패거리적 개혁 청산해야

이 밖에도 그는 의료개혁·교육개혁·언론개혁 등을 추진했는데 주목해야 할 것은 이들은 사회주의적 개혁이었다는 점이다. 사회주의는 사유재산제도를 근간으로 하는 자유시장경제에 대하여 정면으로 도전하는 안티테제다. 소련이 공산당 독재정치를 했듯이 사회주의는 법치가 아닌 '세력'에 의한 통치를 주장한다. 자유와 사유재산권을 부정 또는 제한하기 때문에 사회주의는 권력뿐만 아니라 사회를 필연적으로 부패시키고 만다.

부패를 척결할 수 있는 개혁은 자유주의적, 법치적, 사유재산 강화적, 반(反)패거리적인 개혁뿐이다. 양김의 개혁은 이와 방향이 반대였기 때문에 개혁할수록 부패하고 있다.

부패균은 죽은 유기물을 분해함으로써 생태계를 정화하는 가장 효율적인 청소부 역할을 한다고 한다. 그렇게 부패균이 '개혁'과 '사회주의' 권력을 분해하는 현장을 눈 가진 사람들은 지금 목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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