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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형·융합 두 가지를 살려야 한국서도 애플·구글 나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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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22일 서울 은행연합회관에서 열린 한국선진화포럼의 월례 토론회 참석자들이 토론하고 있다. 왼쪽부터 강석훈 성신여대 교수, 현정택 인하대 교수,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 차문중 한국개발연구원 선임연구원. [안성식 기자]

산업 정책 애플 아이폰은 국내 산업계에선 ‘위기의식’의 상징이다.

“한국은 아이폰에 들어가는 부품을 거의 다 만듭니다. 그런데도 왜 아이폰 같은 제품은 못 만들었을까요.”

이날 토론회에서 주제발표를 맡은 강석훈 교수도 아이폰으로 화두를 던졌다.

조선·철강·전자 등 한국의 주력산업 분야에서 이미 중국은 턱밑까지 추격해 왔다.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갈수록 떨어지고 인구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된다. 그럼 앞으로 10년 뒤 우리는 무엇으로 먹고살아야 하나. 큰 숙제가 아닐 수 없다.

강 교수는 “지금 시대엔 더 이상 통하지 않는 과거 방식의 산업정책부터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유망산업을 하나 정해 정부가 집중 보호·육성하던 건 이제 옛날 얘기다. 요즘 시대엔 정부 관료가 미래 유망산업을 정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다. 정부가 내놓고 특정 산업을 지원했다가는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를 정면으로 위반하게 된다.

그럼 뭘, 어떻게 바꿔야 할까. 강 교수가 내놓은 해법은 “산업정책을 산업인프라정책으로 재탄생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특정 산업을 키우려 하지 말고, 그 밑바탕이 되는 인프라를 잘 깔아주라는 의미다. 이때 산업인프라의 핵심 키워드가 ‘무형’과 ‘융합’이다.

“아이폰이나 구글 TV가 유형의 투자를 늘려 만들어진 게 아닙니다. 아이디어와 창의력에 대한 무형투자가 일궈낸 걸작이죠.”

지금까진 투자라고 하면 공장을 짓고 기계를 사는 걸 의미했다. 정부도 ‘언제까지 어디에 얼마를 투자하겠다’는 식의 산업정책을 내놨다. 하지만 그런 유형투자로 성장잠재력을 만들어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젠 브랜드가치와 조직구조 같은 무형자산에 투자하는 게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길이다.

따라서 강 교수는 “기업이 기계를 살 때와 마찬가지로 브랜드나 인적자원, 사업모델, 조직구조 등에 투자할 때도 세금을 감면해주는 등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세제와 금융지원을 통해 무형자산에 대한 투자를 촉진하자는 것이다.

기술과 제품·서비스를 결합하는 융합은 세계적인 트렌드다. 물건이 아닌 영혼을 팔아야 하는 이른바 ‘마케팅 3.0시대’가 오면서 융합은 새로운 시장을 여는 중요한 열쇠가 됐다.

하지만 국내엔 융합을 촉진하긴커녕 오히려 가로막는 칸막이 규제가 곳곳에서 발목을 잡는다. 기업이 서로 다른 A와 B란 상품을 융합해 만들어내면, 이를 어느 부처가 승인하느냐를 놓고 공방이 벌어지기 일쑤다. 강 교수는 “디지털 문화 콘텐트는 중요한 무형자산인데도 방송통신위원회·지식경제부·문화체육관광부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어느 부서 것도 아닌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차문중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도 이에 동의했다. 그는 “여러 스마트폰이 나오고 있지만 의사가 스마트폰으로 원격 진료를 하는 건 아직 금지돼 있다”며 “스마트폰과 의료, 두 가지를 융합하는 게 법으로 아예 막혀 있다”고 지적했다.

2008년 말에야 상용화된 인터넷TV(IPTV)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한다. IPTV가 방송이냐 아니냐를 두고 당시 방송위원회와 정보통신부의 줄다리기가 이어지면서 결국 5년이나 허송세월을 보냈었다. 기술은 먼저 개발해 놓고도 상용화는 다른 나라보다 결국 뒤졌다.

이어진 질의응답에서는 산업인프라 중에서도 특히 인적자원과 관련된 질문이 이어졌다. 토론회에 참가한 한 대학생은 “사회에서 창조성과 융합을 강조하는데, 정작 창의력은 어떻게 해야 기를 수 있는 건지가 막연하다”고 말했다. 김종석 홍익대 교수도 “무형과 융합이 미래 먹을거리를 만들어낼 키워드인 건 맞지만 이에 맞는 인적자원을 어떻게 개발할 수 있는지가 궁금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강 교수는 대학교육부터 바꿀 것을 제안했다. “대학에서 4년 동안 하나의 전공만 좁게 배우기보다는 다양한 공통과목을 배우게 해 융합적 사고를 키워야 한다”는 주장이다. 아울러 예술과 의료, 인문학과 자연과학 등 다양한 융합형 특수대학원 설립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애란 기자



정년 연장, 해외인력 적극 유치해야

인력자원 일본 4년, 이탈리아 5년, 영국 8년, 미국 10년, 독일 11년, 호주 15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만 달러에서 2만 달러로 뛰는 데 걸린 시간이다. 이걸 한국과 비교하면 부끄럽기 짝이 없다. 1995년 처음으로 1만 달러를 넘어선 이후 2007년 한 차례 2만 달러를 돌파한 뒤 지금까지 계속 1만 달러대에 묶여 있다. 물론 원화가치 변화가 한 원인이지만 성장잠재력이 떨어진다는 게 핵심 이유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차문중 박사는 “자본과 노동 같은 물적 생산요소 투입에 의존하는 한국의 기존 성장 패러다임이 한계에 부딪힌 결과”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급속한 한국의 고령화·저출산 추세는 향후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을 위험 요인”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그가 제안한 해법은 지식집약적 경제로의 체질 변화다. 그는 이를 위해 우선 “법과 제도의 개선과 준수가 필수”라고 지적했다. KDI 연구에 따르면 법과 제도가 잘 갖춰지고 지켜지는 경제는 성장률이 높은 데다 내부로부터 경제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작다. 차 박사는 “한국의 청렴도 수준이 일본 수준 정도로만 개선돼도 경제위기를 겪을 확률이 8~16% 낮아진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그는 능동적 개방도 경제성장에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자유무역협정(FTA)은 물론이고 세계무역기구(WTO)의 다자간 통상 협상에 적극 참여해 신흥시장을 개척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차 박사는 “정부는 국제적 분업구조를 현명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고, 개방 때 나타나는 갈등의 조정자로서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향후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년 연장 또는 직업별 정년제 폐기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할 과제다. 그는 “높은 교육을 받고 전문지식을 축적한 인적 자원을 ‘연령’이라는 잣대로 현업에서 배제하는 것은 국가 경제적으로도 큰 손실”이라고 지적했다.

해외 고급인력 유치도 시급한 과제다. 차 박사는 “한국에 진출한 외국인들에게 필요한 주거, 교육, 의료환경에 대한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글=김종윤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따라가기 아닌 ‘나 잡아봐라’ 전략을

금융 개혁

“다른 나라를 따라가는 ‘캐치업(catch-up)’ 전략이 아닌 우리 스스로 모델을 만드는 ‘나 잡아 봐라(catch-me) 전략이 필요하다.“

서울시립대 윤창현 교수는 이날 주제 발표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한국 경제, 특히 금융 분야에 대한 조언이다. 금융 규제와 관련된 ‘모범 규준’을 우리가 개발해 아시아 국가에 제시하자는 것이다. 윤 교수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교통사고에 비유했다. 미국 금융이 시속 200㎞로 달리다 사고를 냈다는 것이다. 금융위기 이후 미국 금융은 속도를 시속 100㎞까지 줄이려는 작업 중이다. 은행세 도입이나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분리(볼커룰)가 그 일환이다.

이에 비해 한국 금융은 시속 50㎞로 달려왔고, 사고도 나지 않았다. 그는 “미국의 규제를 그대로 따르자는 건 우리도 시속 30㎞까지 속도를 줄이자는 얘기”라며 “그보다는 이 기회에 시속 70~80㎞로 속도를 높여 선진 금융과의 차이를 줄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논란이 되고 있는 ‘메가뱅크론’에 대해서도 “미국은 은행이 너무 커서 문제지만 한국은 경제 규모에 걸맞은 규모를 가진 은행 하나 없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규모의 경제를 위해 은행 규모를 더 키워도 좋다는 것이다.

금융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방안도 제시했다. 윤 교수는 “국부 펀드 규모를 키우고 사모펀드·헤지펀드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자본이 국내는 물론 해외로 투자 대상을 넓힌다면 한국의 위상에 걸맞은 ‘범한류 자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봤다.

원화의 국제화도 강조했다. 동남아 시장을 중심으로 원화를 국제 결제 수단으로 사용해 ‘국지적 기축통화’로 만들자는 것이다. 제주도를 원화 관련 역외 금융시장으로 키우는 방안도 제시했다.

하지만 미국과의 긴밀한 금융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건 여전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2008년 10월 미국과의 통화 스와프 계약 덕분에 외국 자본의 동요가 멈출 수 있었다”며 “미국 달러가 힘을 잃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강한 달러의 위상에 무게중심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한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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