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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잃어버릴 1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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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진보 교육감들은 평등의 기조 위에 수월성(秀越性)을 추구하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제시하고, 비리 청산을 내세운다. 이 모습은 현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잃어버린 10년’을 외치며 교육정책의 큰 흐름을 평등과 공존에서 수월성 및 경쟁으로 바꾸었던 것을 생각나게 한다. 집권당이 바뀌면 중앙정부의 교육기조도 크게 흔들리고, 교육감 직선이 실시될 때마다 교육청 단위의 교육기조도 크게 바뀌게 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왜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는 교육 분야가 다른 분야보다 더 크게 흔들리는 것일까?

지난 5월 교육과학기술부 제2기 정책자문위원회 첫 회의가 열렸다. 그날 교육 분야와 과학기술 분야의 업무현황 보고는 크게 대비됐다. 과학기술 분야는 과거 정부의 주도적인 투자 결과 오늘날 조선·반도체·디스플레이·휴대전화 등이 세계 최고가 되었듯이, 현 정부가 신성장 분야에 투자하면 향후 그 분야가 세계 최고가 될 것이라는 식으로 발표했다. 이 발표는 설득력과 함께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게 했다.

반면 교육 분야는 과거 교육이 입시 위주·획일화·주입식 교육이었고, 학교와 대학이 경쟁력이 없었는데 개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식으로 발표했다. 그런데 이 발표는 현 정부가 시도하는 개혁을 하면, 정말 그러한 성과가 나올 수 있을지, 그리고 그러한 개혁이 가능할지 등 복잡한 생각이 머리를 스치게 할 뿐 희망을 갖게 하지는 못했다. 교육 분야도 현 정부가 이러저러한 분야에 투자를 하고 제도를 개혁하면 10년 뒤에도 미래사회가 필요로 하는 자질을 갖춘 세계 최고 수준의 인재를 배출하게 될 것이라는 식으로 발표했더라면 모두 공감하지 않았을까.

교육계에서 특히 과거를 ‘잃어버린 세월’로 규정하는 일이 반복되는 이유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헌법에 규정해야 할 만큼 공교육이 정치적인 활동이기 때문이다. 어느 정권이나 큰돈 들이지 않고 정권의 색깔을 드러내 보일 수 있는 교육에 가장 먼저 손을 대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앞으로도 이를 피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런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정책의 큰 흐름을 정권, 혹은 교육감이 너무 크게 흔들지 못하도록 ‘교육연속성보장위원회’라도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교육은 성과가 10년 혹은 20년이 돼야 나타난다. 과거를 부정하면 오늘뿐만 아니라 내일도 희망이 없게 된다. 따라서 교육 분야는 과거를 부정할 것이 아니라 과거의 노력이 가져온 성과를 충실하게 분석하고, 현재 우리에게 미진한 점을 어떻게 보충하며, 원하는 미래를 창조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과거를 무조건 ‘잃어버린 10년’식으로 규정한다면 오늘 내가 하는 모든 노력도 또 다른 ‘잃어버릴 10년’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박남기 광주교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