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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잡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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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한반도 해역의 고래잡이 역사는 선사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나라 포경(捕鯨)의 본거지였던 울산을 가로질러 흐르는 태화강 상류의 반구대 암각화(국보 제285호)가 증거다. 신석기 말에서 청동기시대에 제작된 걸로 추정되는 암각화엔 296점의 그림이 새겨져 있다. 그중 58점이 귀신고래를 비롯한 다양한 고래와 고래 잡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고래가 그만큼 흔했고 고래잡이가 성행했다는 흔적이다.

근대 고래잡이는 울산 장생포항에 러시아가 1899년 포경 전진기지를 세우면서 시작됐다. 이 무렵에도 동해는 고래 천지였다. 외국 포경선이 “고래가 배를 향해 오기도 했고, 배가 빨리 갈 때는 고래 등 위로 배가 올라갔다”는 기록을 남겼을 정도다. 이후 일제 강점기에 일본이 포경을 본격화했다. 한국인이 포경을 시작한 건 1946년 4월 16일 범고래 한 마리를 잡으면서부터다. ‘한국 포경 기념일’이 그날이다. 포경이 한창 호황을 누릴 때 포경선은 부의 상징이었다. “포경선 포수 할래? 울산군수 할래?”하면 포경선 포수하겠다고 했다는 얘기가 지금까지 전해 올 정도다.

고래고기는 애초 진미(珍味)는 아니었다. 쇠고기처럼 붉은 살코기를 구할 수 없었던 이들에게 대체 단백질원의 의미가 컸다. 지금은 미식가(美食家)들에게 귀한 대접을 받는 기호식품 반열에 올랐다. 고래고기 요리가 가장 발달한 곳은 일본. 요리 방법만 60가지가 넘는다. “고래 잇몸을 삶아서 초에 찍어먹으면 전복 맛이 나고, 지느러미도 얇게 썰어서 먹으면 아주 쫄깃하다”는 식이다. 한국에서도 회와 수육 같은 전통적 요리뿐 아니라 고래고기 버거와 피자, 카레까지 나오면서 고래고기를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

문제는 현행법상 고래잡이가 불법이라는 거다. 국제포경위원회(IWC)가 86년 고래종 보호를 위해 상업 포경을 금지한 탓이다. 혼획(混獲·우연히 그물에 걸려 잡히는 것)된 고래만 유통이 허용되다 보니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간다. 불법 포획·밀수입과 경찰 단속이 25년째 되풀이되고 있는 이유다.

고래 개체수가 다시 늘면서 사람과 고래 사이의 갈등이 커지고 있다. ‘바다의 포식자’ 고래가 어족자원의 씨를 말리고 있어서다. 한·일 쾌속선과 고래의 충돌 사고도 잦다. 마침 21일부터 모로코에서 제62차 IWC 총회가 열리고 있다. 상업 포경의 제한적 허용 여부를 집중 논의한다고 한다. ‘고래잡이’의 운명이 어찌 될지 궁금하다.

김남중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