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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선수'임수민의 성공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2면

그는 잘 보이지 않는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적도 없고 홈런왕이나 타격왕은커녕 후보에도 이름을 올린 적이 없다.

외모가 준수하거나 체격이 남보다 커서 눈에 띄는 스타일도 아니다. 몸매가 쭉 빠진 것도 아니다. 1m70㎝가 갓 넘는 키에 80㎏이 넘는 몸무게. 게다가 시력이 나빠 안경까지 하나 걸쳤다. 밖에 나가면 야구선수라고 우겨도 남들이 잘 믿어주질 않는단다.

임수민(29·한화).

프로입단 7년차에 연봉은 전체 평균은 물론 팀 평균에도 모자라는 4천만원. 성균관대를 졸업하고 프로입단 때 정작 본인은 지명받은 줄도 모르고 실업팀 한일은행을 알아보고 있다가 친구가 전화를 걸어줘 한화에 지명받은 걸 알았다는 2차지명 11라운드 출신. 당시 프로에 지명됐던 1백80명 가운데 84번째로 낙점받았으니 말 그대로 '보통선수'다.

그런 그가 시즌 초반 한화의 상승세에 불을 지피고 있다. 15일 현재 타격 4위(0.433), 장타율 4위(0.767), 출루율 5위(0.485)에 득점(12개)은 1위다. 1회성으로 끝날지 모르는 시즌 초반의 '작은 성공'이지만 임수민의 호성적은 보통선수의 집념과 꾸준한 노력이 만들어낸 결실이라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그는 앞서 말한 것처럼 신체적으로 뛰어나지 않지만 운도 남들 만큼 따라주지 않았다. 1996년 프로입단 동기 이영우·송지만(이상 한화)·홍원기(두산으로 이적) 등이 곧바로 주전자리를 차지하고 세상에 이름을 알렸을 때 그는 후보선수로라도 1군에 남기 위해 땀을 흘렸다.

입단 3년차인 98년 주전급 기량을 지녔다고 스스로 자신감이 생겼을 때는 유격수로 쓰기 위해 데려온 조엘 치멜리스라는 외국선수가 느낫없이 어깨가 안좋다며 2루자리를 차지해버렸다. 또 백업이었다.

99년, 용병을 다른 선수로 바꾸면서 2루수 자리가 그에게 돌아왔고 그는 주전 2루수로서 팀의 첫 한국시리즈 우승에 한몫을 했다.

그제서야 그의 야구인생에 좀 햇빛이 비치는 것 같았지만 천만의 말씀. 그는 우승 1주일 뒤 논산훈련소로 가는 입영열차를 탔다.

세번의 좌절. 그러나 그는 '포기'대신 '도전'을 택했다. 그는 "내가 스타가 아니고 보통선수였기에 더 오기가 생겼다"고 했다. 그는 상무에서의 2년을 말 그대로 절치부심했다. 그리고 올 1월 군에서 제대, 팀에 합류했다.

3월, 하와이 전지훈련을 끝내고 주전 3루수로 생각했던 김태균이 수비에 허점이 생겨 주전 2루수로 꼽혔던 백재호가 3루로 옮겼다. 그리고 임수민에게 2루자리가 돌아왔다. 불운만 따라다니던 그에게 모처럼 찾아온 행운이었다.

그는 최근 작은 부상에 시달리고 있지만 "무명 선수가 부상이 어디 있고 슬럼프가 어디 있느냐"고 반문한다. 그저 경기에 뛸 수 있기만 하면 다행이라는 말이다. 프로야구를 주름잡는 것은 이승엽이나 이종범 등 화려한 스타들이지만 전체의 큰 판을 지탱해주는 '다수'는 임수민과 같은 보통선수다.

그리고 그들은 '○○왕'이 아닌 '부상 없는 주전'을 꿈꾼다. 화려하지 않은 임수민의 '보통선수 성공기'가 시사하는 의미다.

야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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