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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나이지리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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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내 이름은 마리암 아바차. 전 나이지리아 대통령의 부인이죠. 스위스 계좌에 묶여 있는 5000만 달러를 찾게 도와주면 30%를 사례할게요.” 흔히 ‘나이지리아 스캠(scam·사기)’이라 불리는 e-메일의 전형이다. 졸지에 거액을 횡재할 꿈에 부풀어 세계 각국에서 피해자가 속출했다.

사니 아바차 전 대통령이 석유 수출로 쌓은 막대한 국부를 해외로 빼돌린 게 사실이다 보니 다들 혹할 만도 했다. 당시 고위 관료층은 물론 군인·경찰들까지 덩달아 부정 축재에 혈안이 됐었다. 그 바람에 집권 5년 새 전 국민의 80%가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등 민생은 도탄에 빠져들었다.

유일한 위안이 바로 축구였다. 국민들은 국가대표팀 ‘수퍼 이글스’의 경기를 보며 피폐한 삶을 잊었다. 나이지리아에선 종교가 아니라 축구가 아편이다. 그걸 잘 아는 아바차는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의 임기 중인 1994년 나이지리아가 월드컵 본선에 처음 진출하고 96년 올림픽에서 우승한 게 우연이 아니다. 98년에도 월드컵 본선에 나간 대표팀은 1차전 경기를 닷새 앞두고 아바차가 급서했다는 ‘비보(悲報)’를 접했다. 애도의 뜻으로 일제히 검은색 완장을 두른 선수들은 ‘무적함대’ 스페인에 3-2로 역전승을 거두는 이변을 연출했다. 그즈음 나이지리아 곳곳에 들끓던 민주화 요구 시위도 이날 하루는 모두들 응원에 빠져 잠잠했다고 한다.

정치, 아니 세상 그 무엇보다 축구를 우선시하는 나이지리아의 국민성은 지난해 말 대통령 실종 사건에서도 드러났다. 우마루 무사 야라두아 당시 대통령이 심장 수술을 받은 뒤 8주간이나 공식석상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사람들 관심은 이내 올해 초 앙골라에서 열린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대회로 옮아갔다. 얼마 후 잠적을 깨고 BBC와 인터뷰를 한 대통령의 마지막 말도 이랬다. “‘수퍼 이글스’의 선전을 기원한다!”

이다지도 유별난 성원을 받는 독수리들과 태극전사들이 내일 새벽 한판 승부를 펼친다. 98년 스페인전에서 결승골을 넣은 선데이 올리세는 “국민들을 위해 이기고 싶었다. 그들은 승리를 누릴 자격이 있다”고 했다. 자격으로 치자면 빗속에도, 새벽에도 붉은 물결을 이루고 ‘12번째 선수’로 뛰는 우리 국민들 역시 결코 뒤지지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과 나이지리아, 어느 쪽이 더 절박하게 승리를 원하는가. 집념의 크기가 내일의 승부를 가를 것이다.

신예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