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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사냥은 이제 그만, 유쾌하게 월드컵을 즐겨라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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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호 16면

허정무 감독

‘마녀 사냥’의 시대는 중세 말기에서 근대에 이른다. 유럽과 북아메리카 지역에서 행한, 마녀나 마법 행위에 대한 재판과 처벌 등 일련의 행위를 일컫는다. 현대 정치학에서는 마녀사냥을 전체주의의 산물로, 심리학에서는 집단 히스테리의 산물로 본다. 오늘날에는 사회학적 용어로 “집단이 절대적 신조를 내세워 특정개인에게 무차별한 탄압을 하는 행위”를 의미한다.(DAUM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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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라고 해서 불문곡직 죽이지는 않았다. 나름대로 재판을 해서 마녀임을 입증한 다음 처형했다. 마녀를 가려내는 방법은 크게 네 가지다.

첫째, 눈물 시험. 마녀는 사악해서 눈물이 없다. 용의자는 눈물을 흘려 무죄를 입증해야 했다. 둘째, 바늘 시험. 마녀는 난교(亂交) 때문에 피가 말랐으니 바늘로 찔러도 피를 흘리지 않는다. 셋째, 불시험. 달군 쇠로 지져서 견뎌내는지, 상처가 남는지 확인한다. 마녀는 악마가 돕기 때문에 이 난관을 통과한다. 넷째, 물시험. 물은 깨끗한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마녀가 들어오면 물 밖으로 내친다.

이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을 수는 없다. 생사의 기로에서 갑자기 눈물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사람의 몸에 바늘로 찔러도 피가 나지 않는 부분을 찾아낼 수도 있다. 뭉툭한 바늘을 쓰면 피가 날 리 없다. 불시험은 통과 불가능. 물시험은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을 시험이다. 물에서 떠오르면 마녀임이 증명되고, 가라앉으면 익사다.

오성근이 쓴 『마녀 사냥의 역사』라는 책에는 이런 얘기도 나온다.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니는 마녀는 깃털처럼 가볍다. 그래서 저울로 가려내기도 했다. 네덜란드의 오우아데바터라는 곳은 저울 시험으로 유명했다. 여기서는 마녀의 무게를 50파운드(약 25㎏) 이하로 규정했다. 25㎏도 안 되는 성인 여성은 흔치 않다. 그러나 재판관이 눈금을 속이면 방법이 없다.

현대의 마녀 사냥은 직접적으로 죽음을 동반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견디기 어려운 공포와 죽음에 대한 충동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므로 그 속성은 오리지널과 다름없이 잔인하다. 예를 들어 스포츠 팬들은 월드컵이나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같은 대회를 관전하며 열광한다. 그러나 출전한 한국 팀의 성적이 기대에 못 미치면 희생양을 찾아나선다. 한국 스포츠판(版) 마녀 사냥이 시작된다.

WBC 결승에서 일본의 이치로에게 결승타를 맞은 임창용이 대표적이다. 임창용이 일부러 치기 좋은 공을 던졌을 리 없다. 그러나 팬들은 일본 무대에서 뛰는 그를 희생양 삼았다. 이번 월드컵도 예외 없다. 17일 한국이 아르헨티나에 지자마자 용병술과 전술을 들먹이며 허정무 감독을 볶아댔다. 그리스를 상대로 잘 싸운 차두리 대신 기용된 오범석, 자책골을 넣은 박주영도 용서하지 않았다.

그러나 조별리그는 아직 끝나지도 않았다. 한국이 불행하게도 16강에 오르지 못해도 한두 선수의 책임은 아니다. 대표팀의 성적은 그 나라 축구 역량을 말해준다. 팬들의 수준도 그 역량의 일부가 된다. 마녀의 사악함은 마녀를 쫓는 사람들의 흉포한 마음속에 숨었을지 모른다. 혹시 모르니 잘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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