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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음하는 백두대간 단체산행 자제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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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4면

국내 등산 인구가 5백만명으로 추산되는 가운데 건전한 등산문화 정착이 필요한 시점이다. 본지는 등산의 역사, 산행 주의점, 등산 상식 등에 대한 등산 칼럼을 신설한다. 필자는 등산 칼럼니스트 이용대씨.

<편집자>

백두대간(白頭大幹)은 수백년을 내려온 우리 고유의 산맥 개념이다. 일제하 민족의 수난 속에 태백산맥으로 둔갑했다가 부활되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다.

1980년대 초반 이우형이라는 고(古)지도 연구가에 의해 조선조 때 만들어진 지리서 산경표(山經表)가 발굴되면서 백두대간은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처음에는 생소한 어휘였지만 산악인을 중심으로 확산되면서 이제는 대기업의 광고에까지 등장하고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많은 산악인들이 다시 찾은 우리의 옛 산줄기 개념을 확인하기 위해 백두대간의 마루금을 걷고 있다.

그러나 탐방객의 이상 과열로 수십명에서 많게는 수백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동시에 백두대간 종주에 나서고 있어 대간은 골병을 앓고 있다.

아마도 단군 이래 백두대간만큼 많은 사람의 인기를 독차지한 산줄기도 없을 듯싶다. 세월이 흐를수록 완주자가 늘어나고 서점에는 수많은 대간 종주(縱走)체험기가 발간되고 있다.

토양층이 얇은 능선길을 많은 인원이 동시에 통과할 경우 토양과 식생이 훼손된다는 것은 불보듯 뻔하다. 백두대간 보존을 내세워 종주의 열망을 막을 수는 없지만 많은 인원을 동원하는 산행만은 자제했으면 한다. 몇몇 안내산행 단체는 매주말 백두대간 구간 종주를 떠나고 있으니 동원되는 연인원은 엄청난 숫자일 것으로 추측된다. 한 기업은 지난해 수억원을 들여 구간별로 2백~3백명씩 연인원 8천여명의 대간 종주행사를 벌였다.

그러나 백두대간은 이제 등산로가 패어 비만 오면 토사가 유출되고 능선주변의 나무들은 뿌리를 드러낸 채 신음하고 있다. 이제 능선은 포클레인이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넓어졌다.

갈림길마다 나뭇가지에 수십개씩 어지럽게 나부끼는 리본뭉치는 무당이 굿마당을 벌인 듯하다. '자연을 보호하자'는 글귀가 선명한 리본뭉치는 자연미를 해치고 있다. 리본은 제한적으로 부착하는 것이 자연친화적인 산행 태도다. 또 대열의 후미에서 리본을 회수해 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백두대간의 지도상 거리는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한반도의 남북 1천6백25㎞(남한 구간 6백90㎞)를 가르는 국토의 등뼈다. 이 땅의 모든 산줄기와 통하고 있으며 10대 강(江)의 발원지다. 한반도의 골격을 이루는 대부분의 명산이 자리잡고 있다. 이를 다음 세대에까지 온전하게 물려주는 것이 우리의 의무다. 2002년은 '산의 해'다. 산을 돌보고 아끼는 일에 우리 모두가 동참해야겠다.

<코오롱 등산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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