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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 교통문화가 국격을 좌우한다 ④ 사업용차량 안전 불감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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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14일 오후 8시. 경부고속도로의 출발점인 부산시 금정구 두구동 부산 요금소.

부산항을 통해 들어온 컨테이너를 운반하는 트레일러들이 꼬리를 물고 들어오고 있었다. 보조 트레일러까지 붙인 8t 트럭에는 화학물질로 보이는 검은색 드럼통 수십여 개가 빼곡히 실려 있었으나 제대로 묶여 있지 않았다. 꼬리등이 켜지지 않거나 불빛이 희미한 차들도 보였다. 교통사고 위험에 노출된 차량들이 도로를 질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맥주 상자를 가득 실은 트럭이 사고를 내고 멈춰서 있다. 대형 사고는 아니었지만 맥주 상자가 떨어지면서 뒤따라오던 차량들은 교통 정체로 고생을 했다. [중앙포토]

세계 5위의 무역항인 부산시내 도로에서는 컨테이너 추락 사고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 2월 25일 오전 11시20분쯤 부산시 사상구 낙동대교에서 부산시내 방면으로 달리던 25t 트레일러에 실려 있던 컨테이너가 맞은 편 차선에 떨어졌다. 경찰 조사 결과 컨테이너 잠금장치를 하지 않은 빈 컨테이너가 돌풍에 날아간 것으로 드러났다. 부산동부서 이흥기(51) 교통관리계장은 “컨테이너 트레일러 운전자들이 잠금장치를 채우지 않은 이유는 차량이 뒤집힐 위험이 있을 때 컨테이너만 떨어뜨리기 위해서다”며 “대형사고 예방을 외면한 채 자신의 안전만 생각하는 운전자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처럼 트럭·버스·택시 등 운전을 직업으로 하는 사업용 자동차 운전자의 안전 불감증이 심각하다. 사업용 자동차 교통사고로 연간 1000여 명이 숨지고 있다. 자동차 1만 대당 교통사고 사망률은 비사업용 자동차보다 5배나 높다. 화물자동차 교통사고는 4월 말 현재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4% 늘어났다. <그래픽·표 참조>


지난해 12월 16일 경북 경주시 현곡면 남사리에서 18명이 숨진 관광버스 추락사고의 운전자 권모(56)씨는 무자격자였다.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은 사업용 자동차 운전자 자격 요건으로 면허증 외에 운전적성 정밀검사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운전적성 정밀검사는 알코올 중독과 정신적 결함 여부를 알아보는 인성검사와 위급상황 대처능력을 테스트하는 기기검사로 이뤄진다. 권씨는 이 검사에서 부적격(5등급) 판정을 받았지만 운전을 했던 것이다.

규정을 위반할 경우 여객자동차 사업주는 60만원의 과징금을, 운전자는 50만원의 과태료를 물게 된다. 하지만 화물차량 운전자는 화물운송종사 자격이 없어도 처벌을 받지 않는다. 익명을 요구한 화물차량 운전자는 “무자격 상태의 운전자들이 20∼30%쯤 된다”고 털어놓았다.

사업용 자동차의 높은 교통사고 발생률은 복합적이지만 과속·과로 운전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에서는 대형트럭의 과속·과로 운전을 막기 위해 미리 고속도로 진입허가를 받도록 하고 있다. 고속도로를 이용하기 전에 미리 교통·도로 부서인 RTA(Roads and Traffic Authority) 사이트에 들어가 출발지와 목적지를 입력한 뒤 휴식시간과 운행시간을 지정받는다. 목적지 요금소 도착시각이 RTA가 정해준 시각보다 빠르거나 지정 휴게소에서 쉬지 않으면 처벌을 받는다.

화물차량의 과속 규제도 엄격하다. 4.5t 이상 화물차가 지정 속도를 15㎞ 초과한 경우가 3년간 세 차례 이상 적발되면 3개월간 차량 운행을 정지당한다.

한국도 사업용 자동차사고 줄이기에 나섰다. 교통안전공단은 교통사고 사망자가 자주 발생한 1000개 운수업체를 집중 관리하는 ‘1000사 2020 프로젝트’를 지난해 도입했다. 이 프로젝트가 도입된 뒤 2008년에 비해 사망자 수가 57%(156명) 줄어들고 교통사고 피해액도 25%(32억원) 감소하는 결과를 거두었다.

교통안전공단 안전기획처 한정헌 과장은 “교통사고는 운이 나빠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확률이고 과학이며 문화”라며 “교통사고 발생 확률을 낮추기 위한 과학적인 관리와 안전벨트 매기, 휴대전화 사용 않기 등 교통문화가 확산되면 사고는 줄어든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호주·일본·프랑스·독일=김상진·강인·김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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