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처럼 구조조정 하랬더니 부실기업'救助'하는 日 은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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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일본 정부가 추진 중인 기업 구조조정이 일본 은행들엔 '부실기업 살리기'로 받아들여지는 모양이다.

일본 정부는 지난달 말 디플레 종합대책을 마련하면서 한국처럼 은행을 통해 부실기업 구조조정을 추진키로 했다. 이달 들어 금융청은 은행 대출 1백억엔이 넘는 기업 중 경영이 어려워진 곳에 대해 은행이 엄격한 심사를 벌여 처리 방안을 신속히 강구하라고 재촉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 4일 미즈호파이낸셜이 사토(佐藤)건설을 법정관리에 집어넣은 것을 계기로 은행들의 부실기업 일제정리가 시작되는가 했으나 그 후엔 추가 지원책 일변도다. 법정관리·워크아웃 등 본격적인 '외과수술'보다는 부채탕감이나 추가융자가 단골 메뉴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UFJ은행은 일본 최대의 아파트건축업체 다이쿄(大京)에 부채탕감·추가융자 등으로 3천억엔을 지원키로 하고 다이이치강교(第一勸業)·아사히은행들에 협조를 구하고 있다.

다이쿄는 건설경기가 악화되는 바람에 이미 1조엔 이상의 부채를 지고 있는 형편이다.

미쓰이스미토모(三井住友)은행도 종합건설업체인 후지타에 대해 출자전환·부채탕감 등 모두 4천억엔의 금융지원을 추진 중이다.

후지타는 1999년에도 사쿠라은행 등으로부터 1천2백억엔의 부채탕감을 받은 적이 있으나 경영이 회복되지 않아 현재 빚이 8천1백억엔에 이른다.

후지(富士)은행도 중견 백화점 이와타야(岩田屋)에 대해 2백80억엔의 부채탕감을 추진 중이며 미즈호파이낸셜은 아스카(飛鳥)건설에 대한 빚보증 2백30억엔 중 상당액을 면제해줄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다이이치강교은행은 신용카드업체인 오리코로부터 약 2천5백억엔, 셔터 제작사인 도요(東洋)셔터로부터 1백26억엔의 금융지원을 각각 요청받고 방법과 금액을 검토 중이다.

은행들은 지원대상 기업들이 모두 회생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들 중 상당수는 이미 2~3년전 부채탕감 조치를 받은 뒤에도 계속 경영이 악화된 업체들이다.

이에 대해 금융청은 "회생 가능성이 낮은 기업에 추가지원을 해줘 부실을 더 키울 경우 은행에 책임을 묻겠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러나 은행들은 대대적인 부실기업 정리 과정에서 적자를 내 당장 책임을 지는 것보다는 추가지원을 통해 시간을 벌자는 쪽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은행들의 지원이 구조조정을 그르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도쿄=남윤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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