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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날씨는 무덥죠. 근데 한국 드라마군인·승려만 등장하는 TV에도 한류 바람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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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호 22면

미얀마 국영TV에서 방송 중인 한국 드라마 ‘가문의 영광’. 화면 아래 미얀마어 자막이 보인다. 오른쪽은 한류 붐을 타고 레스토랑 사업에 성공한 ‘문 베이커리’의 정주아씨. 양곤=김수정 기자

“미얀마 날씨는 무덥죠. 근데 한국 드라마에 나오는 레이어드(옷을 겹쳐 입는) 스타일에 빠졌어요. 서울에 꼭 가보고 싶어요.” 양곤 시내에서 만난 20대 여성의 얘기다. 개혁·개방, 경제 발전의 큰 물결이 중국을 거쳐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까지 밀고 들어오다 미얀마 국경 문턱에서 주춤하고 있지만 한류는 문턱을 쉽게 일찍부터 넘어섰다. 2001년 10월 KBS 드라마 ‘가을동화’가 그 시작이었다고 한다. 드라마의 주인공 ‘은서’(송혜교 역), ‘준서’(송승헌 역)는 식당이나 귀금속 가게에서 요리나 보석을 선전하는 ‘전속 모델’이 돼 있었다. ‘Eunseo Junseo Beauty palor -Korean style’(은서 준서 미용실-한국 스타일)이라고 간판을 단 미용실도 있었다.

미얀마의 방송은 모두 국영으로 MRTV와 MWD(먀오디·국군방송) 방송이 있다. 문화시설이 별로 없는 미얀마인들에겐 라디오·TV가 주요한 오락수단이라고 한다. 그동안 ‘해피투게더’ ‘대장금’ ‘대조영’이 프라임 타임대인 오후 7~8시에 집중 방영됐다. 호텔 숙소에서 미얀마어 자막이 들어간 ‘가문의 영광’(SBS)을 볼 수 있었다. 그 외엔 최고권력자 탄 슈웨 의장과 군인들이 주민들에게 선물을 나눠주고 연설하는 장면, 승려들과 불상, 파고다(탑)를 배경으로 한 명상 프로그램이 저녁시간 시청한 프로그램의 대부분이었다. 한 교민은 “녹색(군인)과 주황색(승려)만 나오는 TV 프로에서 한국 드라마는 주민들의 큰 오락물”이라고 말했다.

주미얀마 대사관 관계자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미얀마어 자막이 들어간 한국 드라마 DVD가 이곳에선 좋은 선물이다”고 말했다. 미얀마어로 자막을 넣어 공급하는 전문 업체도 있다고 한다. 드라마에서 배우들이 문신을 하거나 짧은 미니스커트 차림으로 나오면 뿌옇게 가림 처리를 하고 대사 중에 ‘미국’은 ‘외국’으로 번역해야 심의를 통과한다고 한다.

2004년 1월부터 미얀마에서 근무해온 대우E&P의 주시보 상무는 “6년 전엔 전통의상 ‘롱지’를 입지 않은 여성들이 거의 없었는데, 지금 청바지나 짧은 ‘롱지’를 입는 이들이 많이 생겼다”며 폐쇄됐던 미얀마 사회가 점점 변해가는 것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이곳 사람들이 ‘소주, 자장면을 보고 초록색 병에 든 물은 뭐냐’ ‘접시에 담긴 시커먼 음식이 뭐냐’고 묻는다”며 모두 다 인기가 많다고 말했다.

한류 바람을 타고 사업에 성공한 교민들도 꽤 있다. 한국식 레스토랑 ‘문 베이커리’ 정주아(40) 사장이 대표적이다.2004년 양곤 중심가 보앙조 1호점 등 12개 분점을 냈다. 네피도에도 있다. 땀웨 지점(9호점)에 가봤다. 서울의 쾌적한 카페 분위기. PC 코너와 녹차·김 등 한국 식품·화장품 판매 코너도 있었다. 인터넷 서핑을 하는 청년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한류 덕을 많이 봤죠. 이곳에 오면 드라마에서 본 서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는 생각에 많이 찾는 것 같아요.” 정 사장은 한국에서 요리사를 데려오고 종업원 서비스 교육도 많이 했다고 했다. 식당 안에 대형 TV가 여러 대 있었다. “이곳 사람들이 축구를 아주 좋아해요. 영국 프리미어 축구를 다들 꿰고 있는데, 박지성 선수 인기도 많아요.” ‘문 베이커리’ 종업원 수는 700명이나 된다. 매출을 물으니 “각 지점당 하루 50만~100만원 정도”라고 했다.

지난해 미얀마엔 축구 프로리그가 생겼다. 인천 FC 출신 선수 2명이 ‘제야 쉐미’팀에서 뛰고 있다. 김규준(23)·정선비(23) 선수다. 김규준 선수는 미얀마와 왕래가 많은 인천시 조정석 홍보대사의 제안으로 왔다고 한다. 김 선수는 “치안도 좋고, 사람들도 좋다”면서 “골을 많이 넣고, 좋은 인상을 남겨서 미얀마-한국 문화 교류 촉진 역할을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경기 후 호텔로 전화해오는 팬들도 생겼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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