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시평

광우병 촛불과 한·중 FTA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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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지난 3월 이명박 정부 2년의 대외 경제정책을 평가하는 토론회에 참석했다. 토론회는 축제의 분위기를 타고 있었다.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지지율이 치솟고 있었고 그 배경에는 굵직한 정부의 대외 경제정책 성공담이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필자는 썰렁한 발언을 하고 말았다. 지난 2년 대외 경제정책에 있어 가장 큰 사건으로 기록될 것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자유화가 촉발한 촛불사태일 것이며, 미래의 FTA(자유무역협정)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성찰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얼마 전 한 일간지가 잠자고 있던 ‘광우병 촛불’ 논란에 다시 불을 붙였다. ‘위대한 민중의 승리’와 ‘실패한 좌파의 준동’이라는 좌우의 시각 사이에서 또 한번 돌팔매질이 오갔다. 2년 전 봄날 밤 광화문 거리를 걸으면서 필자는 영악한 소몰이꾼과 멍청한 송아지들을 목격하였다. 하지만 눈에 가장 커다랗게 비친 것은 생활고에 짜증난 서민들이 오만한 정부를 혼내주고 신나 하는 모습이었다.

경제학자가 거대한 정치적 사건의 본질을 규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촛불집회의 몇 가지 배경에 주의를 기울이고 싶다. 첫째 한·미 FTA의 효과를 둘러싼 극단적인 과장과 대립이 이미 국민을 양분시켜 놓고 있었다는 점, 둘째 쇠고기 수입 자유화가 급박하게 추진되었다는 점, 그리고 수입 쇠고기의 월령(月齡)을 제한하고 특정 부위를 제외하는 검역조치만 취했어도 아마도 촛불집회는 피할 수 있었으리라는 점이다.

한·중 FTA에 대한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정부가 동아시아 경제 통합에 있어 이니셔티브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던 터라 반기는 이들이 많다. 필자도 그중 하나다. 한·중 FTA가 높은 단계에서 성사된다면 고급 제조업 제품의 수출을 증가시키고 값싼 제조업 제품과 농산물의 수입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한국 경제에 충격과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다. 그리고 그 충격과 이익은 한·미 FTA를 크게 상회할 것이라 믿고 있다. 중국의 무역장벽이 미국보다 높고, 중국과의 교역량이 미국보다 크며, 중국과의 거리가 미국보다 가깝기 때문이다. 일부 전문가는 우리의 대중국 수출의 대부분이 이미 낮은 관세를 적용 받고 있는 중간재이기 때문에 큰 혜택은 없으리라 추정한다. 그러나 중국 가계의 소비가 급속히 팽창하고 고급화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FTA가 최종 소비재의 수출을 자극하는 효과는 크게 불어날 것이라 기대된다.

문제는 한·미 FTA가 촉발한 것과 같은 극심한 정치적 대립을 피할 수 있느냐다. 정치적 갈등은 경제적 이익을 상회하는 상처를 사회에 줄 수 있다. 우선 긍정적인 것은 한·중 FTA의 효과가 정치적 동기에 의해 극단적으로 과장되면서 국민의 분열을 초래할 가능성이 한·미 FTA에 비하여 낮을 것이라는 점이다. 한·중 FTA는 친중(親中)과 반(反)개방을 추구하는 진보와, 친미와 개방을 추구하는 보수에게 쓴 약과 사탕을 동시에 삼켜야 하는 어색한 선택을 강요함으로써 양 진영의 투지를 많이 꺾으리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한·중 FTA가 제조업의 대기업 집중과 중소기업과 농업의 구조조정을 가속화시킨다는 점은 중대한 쟁점으로 부각될 것이다. 정부는 농산물과 생필품 가격의 하락이 저소득층에 주는 혜택을 강조하면서 중소기업과 농업의 구조조정 대책을 마련함으로써 사회적 갈등의 여지를 축소하여야 한다. 또한 정부의 주요 정책이 국민의 분노를 일으키는 이유는 내용보다 오만하게 몰아붙이는 특유의 스타일 때문이라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중국산 먹을거리에 대한 비합리적인 공포를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다. 괴담의 확산에 신속히 대처하는 홍보시스템을 구축하여야 하는 것은 물론 과학적 증거에 입각하고, 국산품과 수입품에 공평하게 적용되며,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검역체계를 수립해야 한다. 이미 늦은 감이 있다. 협정을 눈앞에 두고 검역기준을 완화하면 국민이 대국에 대한 굴복이라 분노하고, 강화하면 협상 상대국이 분노할 것이기 때문이다.

송의영 서강대 교수·경제학